형제의 아아

by 정원

미국에 살던 형제가 이직을 앞두고 두 달 동안 한국에서 지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몇 년 전 홀로 동부의 땅을 밟다 인제는 서부의 땅으로 가 살게 된 그가 떠나기 직전 날까지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살던 때처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60일가량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형제가 나가 산 지도 10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서서히 함께 산 세월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래선지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 밤 나는 다음 날이 오는 게 싫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도 헤어짐을 꺼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을 반복한 상황이었음에도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별의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건지 아쉬움은 익숙해지지도 작아질 낌새도 없이 밤을 가득 채웠고, 나는 취약한 이별을 이겨내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밤을 넘겼다.


여름에도 되도록 따뜻한 홍차를 마시는 나와 다르게 형제는 아무리 추워도 얼음이 턱 끝까지 채워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했다. 겨우내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실 때도 몸을 웅크린 채 민첩하게 뒤 베란다 냉장고까지 가서 얼음 틀을 가져와 텀블러에 쏟아내는 모습을 볼 때도 추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장갑 없이 얼음이 가득 담긴 잔을 꽉 쥔 채 대용량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 그에 반해 나는 한참 적은 용량을 홀짝거렸다. 다른 점을 열거하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비슷한 점들과 가족이라는 점으로 우리는 달라서 문제가 되는 모든 걸 무너뜨리고 쉽게 화해하고 함께한다. 수백 개의 복잡한 감정이 뒤죽박죽 섞이다가도 금방 너스레 떠는 모습을 보면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기름을 한껏 머금은 기름종이처럼 미움은 투명하게 나약해진다. 매번 친구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힘든 모습을 내비칠 땐 거침없이 그의 편이 되어준다. 인제 그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든 내가 미국으로 놀러 가든 한동안 내 주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용량으로 마시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어려워졌다.


결국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형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적었다. 적다 보니 빼곡히 3장이 채워졌고, 손이 아파 힘들어 멈췄으나 머릿속에서는 할 말이 넘쳐났다. 눈을 마주치며 나누기엔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아무리 서로 밉고 맞지 않을 때가 잦다고 애정을 오글거려할지라도 결국은 내가 응원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안녕!

오빠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돌아갈 때가 됐네. 함께 산 세월보다 따로 산 세월이 길어지고 있을수록 이별하는 순간이 아쉬워지고 있어. 같이 산다고 계속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아님에도 오빠를 핸드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상황과 실물로 집에서 마주하는 상황은 심적으로 차이가 크다. 그래서 오빠가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잠을 자기 직전까지 내일이 오지 않길 조금은 바랐어. 눈물샘이 콧잔등으로 자꾸만 모이는 느낌이었지. 당연히 또 만날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안녕을 이야기하는 건 내게 참 어려운 일이야.


안 그래도 오빠한테 편지를 쓸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오빠가 내가 줬던 편지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걸 보고 한 번 더 쓰자고 생각했어. 그 편지에는 마약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약 조심하라고 걱정 가득한 이야기를 적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빠야 자기 앞가림 잘하는 사람이니까 인제는 그런 걱정은 접어둘게. 그래도 은연중에 항상 주의는 하고 있길 바라. (언제 어떤 상황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거니까.)

이번 안녕은 오빠가 처음 보스턴에 갈 때보다 이상하게 더 마음이 쓰인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 교류가 더 적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우리 집에서 가장 활발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더 어렵고 힘들까 봐 마음이 쓰이네. 사실 해가 지날수록 낯선 환경에 도전하고 적응하는 일이 참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일 수 있는데 오빠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과감하게 나아가고 곧잘 적응해 자기만의 세상을 새롭게 구축하는 걸 보고 나도 종종 자극받아. 배울 게 많은 형제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고난은 최소한으로 행복은 최대한으로 사는 사람일지라도 가끔 지치거나 힘들 때는 가족들을 떠올려주길.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도 좋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싶거나 잠깐 물러나고 싶을 때 그마저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내 맘속에 있다는 건 훨씬 의지가 되는 일이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오빠를 응원하고 존중할게. 오빠에게 가족이 적어도 우주 안에서만큼은 가장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이길 바라.


두 달 동안은 오빠가 있을 때마다 집안이 훨씬 활기가 넘쳤는데 잠깐 잊었던 적막에 서서히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지. 항상 부모님과 함께 공항까지 가서 오빠를 마중하고 배웅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해 정말로 아쉽다. 집에서 인사하는 것과 공항에서 뒷모습을 보는 건 차이가 큰데 말이야. 그래도 올해 다시 볼 테니까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을게! 한국에서 보든 오빠가 사는 곳에서 보든 아쉬움이 옅어질 때쯤 다시 오빠의 옆구리 공격을 피하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갈 테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있을 거야.


베트남과 보스턴까지 둘만의 기억을 쌓아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나 며칠 전 햄버거 포장 같이 가자고 날 붙잡던 순간이나 오빠는 어릴 적 내가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못할 때 잡아주던 그때 그대로더라. 아마 나는 오빠가 든든하게 느껴질 때를 앞으로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지.

어디서든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채로 잘 지내길


맹목적인 오빠 편이 우주 안에 적어도 세 명 있다는 걸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