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며칠 전부터 들어 드디어 오늘에서야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지만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작년부터 써오던 책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은 미약하게 남아 있었지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엄마와 나눈 대화에서 이 글에 더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몇 가지 글감도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흰 페이지를 보니 이 여백을 채울 만한 활자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몇 번 떠올랐고 몇 번 채웠지만 이내 컨트롤 에이를 누르고 이에스씨를 눌렀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하다 보니 도저히 카페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펼쳤다.
내게는 저녁 전까지의 시간만 남아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수단이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없었다. 간혹 너무 지치고 시간이 없어 때려치우고 싶더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끝내는 돈이 있어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돈, 돈, 돈. 언제나 돈이 끝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평생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 일의 목적이 우선순위가 돈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 의미는 반드시 내가 어떤 수단을 통해서 돈을 확보해야 한단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 자연스레 돈까지 따라ㄸ오면 일석이조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작은 인간이라 부수적인 노동이 필요하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어떤 노동이든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 가지 조건만을 따지는 일엔 온갖 기준이 따라다닌다.
필요에 의한 일에 변수가 생기는 게 너무 싫었다. 1분이라도 늦게 끝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피가 모두 정수리 쪽으로 몰아쳐 곧 폭발 직전인 화산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예상한 시간의 지하철을 타지 못하면 가슴에서나 입에서나 온갖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임에도 전혀 나 같지 않은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자꾸만 반복된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도저히 내가 이곳에 근무할 수 없는 지점이 되고 미움이 된다. 그러니 오래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곳이 태반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그렇게까지 굴었어야 했나 후회한 적이 많다. 하지만 이 버릇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꾸만 돈만 버는 일은 미워진다. 돈을 벌기 위해선 그만큼 나를 고용한 사람이 최선으로 날 써먹을 걸 뻔히 알면서도 난 그냥 돈이 굴러들어왔으면 싶다.
정해진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스케줄 근무를 시도해 봤다. 더 최악이었다. 정해진 일정이 없는 채로 다음 주 일정도 알 수 없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언제 쉴지 모르니 약속을 잡기도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일정이 고정된 채로 일하니 또 누군가에게 매일 시간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스케줄 근무보다는 고정 시간 근무가 나아서 (시간적 스트레스라도 덜 수 있으니까) 지금의 일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임에도 일 년 넘게 오랜 시간 하는 일은 스케줄도, 고정도 아닌 일이다.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달에 어느 정도의 수입은 보장하는 일이다. 재택으로 할 수 있어 장소에 국한 받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완성하기만 한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이걸로 버는 돈은 딱 용돈벌이만 할 수 있는 수준이라 이 한 가지만 할 수 없다. 업무량이 많아지면 또 다른 일들과 비슷하게 스트레스를 받겠지. 최대한 균형을 맞춰가며 쓰러지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잊지 않는 건 언제나 글이다. 최근에 어릴 때 상을 받았던 분야가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진로로 이어진다는 글을 읽었다. 머릿속에 남는 상은 뭐가 있을까? 떠올려 보니 나는 가끔 글쓰기로 상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글짓기에서 종종 상을 받아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글을 부여잡고 있는 걸까? 사실 지금은 글을 좋아해서 쓰는 마음보단 살기 위해 쓰는 마음이 더 큰 것 같긴 하지만.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결국 언제나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채울 수 있는 건 활자인 듯싶다. 기어코 다시 모니터를 켜 꾸역꾸역 몇 자를 채워간다.
쓰고 싶은 글이 있을 땐 읽는 책도 그에 맞춰 고르는 편이다.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찾아 읽다가 최근엔 에세이를 쓰고 싶어서 산문집을 찾아 읽고 있다. 가장 최근 읽고 있는 책은 은희경 작가의 <또 못 버린 물건들>이라는 책이다. 나는 문학 작가들의 산문집이 좋다. 좀 더 작가의 모습을 자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장르다 보니 내가 질문할 필요가 없는 인터뷰집을 읽는 느낌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조곤조곤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나도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덩달아 생긴다. 물론 책을 읽다 보니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란 생각에 조금 내 글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몸에 남은 이야기를 뱉어내야 다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 같다. 사람은 어느 정도 배출하지 않으면 과거에 묶인 채로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빈 페이지를 억지로 채운다. 어딘가에 싣기도 애매한 글을 적음으로써 좀 더 나은 글, 그래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최근에는 너무 많은 게 쌓이기만 했다. 털고 싶다. 여과가 필요하다. 좀 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