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외부의 자극. 즉 알람이 울리거나 망고(반려견) 녀석이 밥 달라고 끙끙거리는 소리에 깨지 않은 휴일의 아침은 상쾌하다. 이른 시각이면 더욱 좋다.
같은 경우지만, 전날의 과음이 외부의 어떤 방해에도 잠을 깨우지 않게해서 늦게 일어난 휴일의 아침은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곧바로 숙취가 어깨 위에 올라타고 헤드 락을 해대기 마련이다.
일찍 일어나 망고의 아침을 챙기고, 전기 밥솥에 밥을 안쳤다. 실로 얼마만에 씻어보는 쌀인지... 그렇게 배가 든든해진 수컷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
항상 녀석이 뛰어놀던 장소에서 목줄을 풀어줬다. 스타트라인에서 튕겨져나가는 단거리 주와 흡사하다. 멀찌감치 까치가 내려 앉아있다. 목표는 까치다. 사료만 먹는 녀석은 분명 놀자고 하는 짓인데 생존의 위협을 느낀 까치는 황급히 날아 오른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추론보다는 직관이 앞서는 순간이다. 마음껏 뛰어다닌 녀석이 혀를 빼어 물 지경에 이르러서야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아이스 카페라떼를 샀다.
휴일이고 일찍 일어난데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날은 드물다.
오랜만에 야신타의 음반을 틀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지만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다.
잘 읽히지 않아 제쳐두었던 책을 펼치고 소파에 누웠다. 분명 잠들게 될테고 책은 이불 대신 배를 덮는데 쓰일 것이다.
그랬다. 예상하던 대로고 원하던 바였다.
살풋 잠들었다 깼는데도 오후가 되려면 멀었다.
집안은 조용하다. 야신타는 혼자서 속삭이다 지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안방에 있던 노트북 테이블을 거실로 옮겨와 앉았다. 냉장고에 넣어둔 편의점 카페라떼를 잔에 채웠다. 야신타를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그제사 글이 눈에 들어온다.
드물지만 혼자만 있게 되는 휴일.
좋아하는 음악이 깔리고 편의점 카페라테의 달콤함에 취해 아무것도 안해도 되지만, 그 어떤 것을 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지금이 나는 무척 행복하다.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졌을 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행복하리라고 믿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행복한 사람들은 공통점을 지녔다. 그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 즐기는 즐거운 활동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나, 작가나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만족할 때 보이는 그런 것이다.
그보다 소박하지만 더 큰 즐거움이 주는 행복이 세상에는 넘쳐 난다.
가령 나는 밤 늦게 퇴근해서 날다람쥐 먹이를 챙겨줄 때도 그런 것을 느낀다. 손바닥에서 도투리를 움켜쥐고 있는 녀석들의 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눈을 바라보면 한없이 행복하다. 물론 꽤 오래 시간이 걸리긴 했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아저씨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경비실 앞 텃밭을 매거나 화단을 가꿀 때 그렇다. 그 즐거움은 다행스럽게도 주민의 분리 수거를 돕는 손간까지 이어진다. 분명 행복하실 거다.
오늘 아침 망고는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마음껏 새를 쫒았고, 공원을 다녀 간 다른 녀석들의 냄새를 맡고, 신선한 공기를 쐤다. 본능에 충실한 하루를 시작한 셈이다.
언젠가 TV에서 물레방아를 돌리느라 하염없이 원을 그리며 걷는 소의 눈망울을 봤다. 나는 분명 눈물자국과 그렁그렁 차 있는 눈물을 봤다. 그 소는 행복하지 않았다.
망고를 줄에 매어 러닝 머신에 태웠다면 행복해 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스럽고 본능에 충실할 때 행복하다.
이제 목욕을 갈 참이다. 엄마의 양수에 담겼었으니 그 또한 행복을 찾는 본능으로의 회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