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영화 <서편제>의 무대가 된 '청산도'라는 섬이 있다. 도심의 팍팍한 일상에 숨이 막혀 올 때면 호남선 KTX에 몸을 싣는다. 탁자 위에 놓인 빈 접시처럼 온전히 혼자인 나를 마주하기에 섬만한 곳은 없다.
송화가 아비인 유봉을 따라 걷던 황톳길을 밟으며 돌담에 손을 얹어 봐도 좋을 것이고, 어스름해 질 무렵 범바위에 올라 노을과 몰아일체(沒我一體)가 되어보는 순간도 권하고 싶다.
여행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나 풍경과 맞닥뜨릴 때 더 풍요로워진다.
항구 어느 식당에서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를 했다. 밤이 더 화려한 도시생활에 젖어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산 하나를 걸어서 넘었다. 9시도 안됐는데 섬은 이미 잠들었다. 질흑같은 밤길을 걷자니 어린 시절 추억이 피어 오른다. 명절 밤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시골 길은 무서웠다. 지금 내 손엔 주전자 대신 해산물과 소주가 담긴 비닐 봉투가 들려져 있다. 폐교 속을 비워내고 단장한 숙소에 객은 나 혼자다. 속쓰림도 숙취도 없는 새벽은 또 얼마만인가. 자연의 치유력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밤 안주였던 해산물 넣은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나선 섬 산책길이다. 섬은 어디나 항구 주변이 시내인 셈이다. 그렇게 낮은 담장 안을 하릴없는 동네 백수처럼 기웃대며 걷다 만났다. 골목 양 켠으로 일본식 가옥에 대문, 색 바랜 땡떙이 원피스가 걸린 양품점, 외풍이 새는 미닫이문이 늘어선 사진관, 흐린 유리창에 페인트로 칠한 약방이라는 간판이 낯설지 않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파시문화거리'라고 명명되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거리보다는 골목이 어울리는 그다지 길거나 넓지 않은 동네 한 귀퉁이다. 요즘 한창 떠들썩한 '목포구도심 입도선매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단다. 거기에 내 유년시절이 남아 있었다. 과거 파시가 열릴 정도로 번성했던 청산항의 영화가 배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시기가 60~70년대였으니 낯설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렇게 남도의 섬에서 내 고향을 만나고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던 경험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골목, 외상이 가능했던 점빵과 외갓집 돌담을 한 데 모아놓은 내 개인 박물관과 다름없었다.
박물관이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니 관리인만 있을테고 어느 굴뚝에서도 밥 짓는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을테다. 마을은, 도시는 사람이 머물러야 숨을 쉰다. 주인장이 찢어진 벽지를 다시 붙이고 봄이면 창호지를 갈고 여름이면 깨어진 기왓장을 손봐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우리 곁에 오래토록 머물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화 세트장과 다를 바가 없다.
훌쩍 떠날 때면 전라도를 찾는 이유를 지인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군산, 목포 그리고 여러 섬을 돌았다. 그곳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어서다. 최근 불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Natuinal Trust)운동이 별건가. 보물 찾기에 나선 초등학생처럼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아니 로컬 트레져(Local Treasure)의 숨은 가치를 알아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언제까지 청산도의 그 골목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관이 매입해서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쉽다. 누군가 낡은 상점의 미서기 문을 열고 나와 줬으면, 그 일본식 대문안에 서리가 내린 백발의 할머니라도 사셨으면 좋겠다. 객쩍은 농담을 건네는 동네 남정네와 한 달음에 내 무릎을 치고 뛰어가는 꼬맹이라도 만난다면 한참 멈춰 서 있을테다.
내 고향 진해에도 근대 문화유산이 어느 곳 못지않게 많다. 진해 역사와 옛 우체국이 그렇고, 통제부 내 여러 건물들이 근대건축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꼭히 지정은 안됐더라도 중원로타리 인근에 산재한 옛 건물들은 또 어떠한가. 나 역시 양 벽을 이웃과 맞댄 관사촌에서 자랐다. 그 좁은 골목을 누비며 자랐다.
건축(建築)은 세우고 쌓는다는 뜻이다.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기억을 쌓아 저장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일이다. 집은, 건물은 그런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 무에 그리 있을 것이며, 허물어뜨리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텐데 우리는 탐욕과 무지로 너무도 익숙하고 간단하게 후회할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은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다. 그 마을이 커져 도시가 되고 그 도시가 사람을 삼켰다.하늘을 가린 빌딩에 목이 졸리고 양계장같은 아파트에 닭 신세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떠도는 도시는 끔찍하다. 마을이 남았으면 좋겠다. 골목에 사람이 살았으면 더욱 좋겠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바램으로 관심을 쏟고 그곳에 둥지를 트는 사람들을 고마워해야한다. 도시의 셈법으로 재단하고 불순한 의도로 손가락질하는 무리들의 말에 귀기울려선 안된다.
그들이 언제 한번 눈길 주던 일이며 골목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그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란 누군가의 자식이며, 마을은 언젠가는 누구나 다시 돌아갈 땅, 그 흙이 썩지 않게 하는 숨구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