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갑을 꺼내본다.
각종 신분증, 지금은 정지됐을 신용카드 1장, 노인복지관의 식권, 증명사진들, 자동차 키 그리고 1만1천원의 현금이 들어있다.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간직하셨던 사진은 장손인 아들녀석과 단 둘이 찍은 사진이다.
첫 딸을 낳고 병실에 누워있는 며느리에게 "수고했다"는 말보다 먼저 "다음번에는 꼭 아들을 낳으렴"하셨던 분이시니 얼마나 끔찍히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모든 가족이 모여 찍은 사진도 있으신데 굳이 이 사진을 간직하셨다.
그런 당신을 두고 어머니는 늘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애같다고 하셨다. 투명하게 다 보이는 사람. 겉과 속이 한결같은 분이셨다.
내가 나이값 못하고 철이 없는 것은 아버지 유전자의 힘일거라는 심증을 뒷받침해준다.
조그만 비닐 코팅된 메모지가 2장 들어있다. 한 장은 학교 비상연락망이다. 맨 윗단 교장란에 아버지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또 한장은 'ㅇㅇㅇ회'라는 타이틀을 봐서는 친목모임의 회원 명단과 연락처가 적힌 종이다. 이전까지 무심코 지나치던 종이였다. 뒷면 하단에 "ㅇ만남 : 매달 첫 木요일, ㅇ장소 : 감나무집 645-0000 , ㅇ 송금 : 857-00-034747"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월례모임이셨나보다. 감나무집에서... 회비는 얼마였는지 적혀있지않으니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이 종이에서 아버지 함자를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특이하다. 회원의 이름은 모두 한자로 적혀있는데 '萬谷 崔OO', '木原 金OO' 식이다.
'다들 호(號)가 있으셨구나. 그렇다면 혹시 아버지도...' 아버지는 뒷장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지나쳤었구나'
" 深海 文OO " 선친의 호는 심해(深海)셨다. 여지껏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셨을까? 아마도 모르셨을 것 같다. 한번도 아버지의 호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없으셨다.
왜 생전에 알려주지 않으셨을까?
이제는 누가 어떤 의미로 지어주신 호인지 알 길이 없다. 굳이 알려고하면 이 종이에 적힌 분들께 전화를 드려보면 알 수 있겠지만 (물론 019- , 017- 로 시작하는 번호이긴 하다)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아버지께서 호를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의미는 두고두고 내가 유추해 볼 양이다.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의 호를 알려줘야겠다. 특히 당신이 그토록 아끼시던 장손에게는 한자까지 익히게 해야겠다.
이렇게도 당신이 우리 곁에 머물렀다 가셨음을 알려주신다. 당신을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