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이 대목이 나는 가장 좋다.
세상을 다 쥔 들 엄마 젖무덤만 할까.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 품만큼 나를 쉬이 잠들게 하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말랑말랑한 홍시의 감촉이 잊고 있던 엄마 젖가슴을 떠올리게 한다.
옆 방에서 홍시 하나를 가져다 줬다. 껍질을 벗겨도 뭉개지지않을만큼 적당히 익은 홍시가 달콤하다. 그러고보면 내가 처음으로 먹어봤던 샤베트도 홍시였던 셈이다.
세계 유일 무이의 홍시샤베트. 지금은 맛볼래야 맛볼 수 없는 오래전 추억 한 자락이 있다. 내가 가사를 지었다면 2절은 "생각이 난다. 홍시를 볼때면 울 외할매가 생각이 난다"였지 않았을까?
' 동아시아 온대의 특산종으로 중국의 중북부, 일본, 한국의 중부 이남에 널리 재배되는 과수.....열매는 난원형 또는 편구형이고 10월에 황홍색으로 익는다.....겉보기에는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 가지가 약한 나무에 속하므로 함부로 올라가면 매우 위험하다.'
'감나무'를 검색하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나의 소역사가 그대로 담겨있어서다.
외갓집은 경남 의령이다. 당연히 감이 달게 열린다는 중부 이남이다.
광산 김씨 우리 외할머니는 살갑고 정스러운 여느 시골 할매는 아니셨던게 분명하다. 육남매 딸 셋 중에 없는 집안의 가난한 교사에게 시집 보낸 둘째딸의 장남인 나를 보면서 그리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 어린 나를 쓰다듬어 주실 때보다 내가 노는 걸 보며 혀를 차실 때가 많았다. 친손주들과 구분지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외손주"라는 말씀도 곧잘 하셨는데 그래도 늘 고이춤에서 제일 많은 동전을 꺼내주셨다.
그러거나말거나 철없는 나는 외갓집이 제일 좋았다.
당시로는 귀했던 외제 코코아도 먹을 수 있었고 외삼촌들은 내가 좋아하는 의령소바를 언제든지 사주셨다. 감나무 가지가 약한 걸 알리 없는 나는 대문간 옆 감나무에 자주 올라갔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고를 치는 개구장이였으니 그대로 지나칠리 만무했다. 가지가 부러져 크게 다친 기억은 없지만 미끄러져 내려와 감나무 껍질에 얼굴을 긁혀 빨간 아까징끼 칠갑을 했던 적은 있다.
한 겨울이면 외할머니는 장독대 살얼음 낀 동치미독에서 홍시를 꺼내주셨다.
유리 그릇에 담아 티스푼으로 떠먹었던 홍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맛본 샤베트가 그것이다. 달면서도 시원하고 뭐라 형용하기 힘든 맛인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귀한 음식이 됐다.
아마도 동치미를 담글 때면 식탐만 많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외손주를 위해 당신께서 감을 넣어놓으셨던 게 분명하다.
아내가 큰 애를 임신하고서인지 낳고서인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우리 집으로 과일 한 상자가 배송됐었다.
감이었다. 나는 상자 겉면에 적힌 보낸 사람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아버지셨다. 아내는 "감사하네. 아버님께 전화드려야겠다"라고는 했지만 5남매중 막내딸로 장인 어른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자라서인지 큰 감동이 묻어나지는 않았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다던데 아버지는 천성 그대로 자식들에게 하듯 며느리에게도 무뚝뚝하고 대면대면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거 당신 먹으라고 보내신거네"
"어떻게 알아? 당신이랑 같이 먹으라고 보내신 거겠지"
"아니. 우리는 이날 이때껏 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 출장을 다녀오셔도 늘 맨 손이셨던 분인걸 뭘.... 나는 아버지가 이러시는 걸 처음 봤어. 당신은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집에서 빅 뉴스감이야"
"그래? 정말? 아... 그렇구나"
감을 보냈노라는 전화도 없으셨고 어머니도 모르게 며느리에게 보낸 감 한상자를 아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만으로 18년째 한 건물에 세들어 있다. 지금은 자식들이 마련해준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셨지만 오랫동안 건물 4층은 주인어른 살림집이었다.
임차인 중에 나를 가장 좋아하시고 챙기셨는데 다른 임차인들이 드러내놓고 불평을 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주인어른께 건의할 내용이 있으면 내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전화를 하셔서 부르셨다.
"문사장 지금 어디에요?"
"사무실입니다."
"바쁘신가?"
"아뇨 괜찮습니다. 찾아뵐까요?" (한번도 핑계를 대거나 안된다고 한 기억은 없다)
"그래요. 그럼 올라와요. 얘기나 하게"
정말 별다른 용무없이 얘기만 나눈다. 아니 듣다가 내려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당신 손주 얘기, 자식들 소식 그리고 매달 받아보시는 월간조선에 실린 기사까지. 그러다보면 언듯 2시간 정도는 흐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려가 소파에 앉으면 당신은 할머니께 차를 내어오라고 시키셨는데 늘 빼놓지 않는 주문이 있었다.
"이봐요. 차 좀 내어오지. 문사장 곶감 좋아하는데... 있지? 그거하고..."
그러면 할머니가 이렇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알았어요. 당신도 참... 아. 문사장 좋아한다고 저 이가 곶감을 늘 챙겨놓는다니까"
실은 오해다. 곶감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챙겨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달아서다.
최초의 발단은 오래전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시작됐다. 두 분의 고향은 경북이신데 상주였던가 동생분이 상주에 사신다고 하셨던가 아무튼 그래서 그날 곶감이 올라왔던 모양이다.
"차 좀 내어오지. 아... 곶감있는데 상주곶감.... 유명하잖아요. 문사장 상주곶감 알죠? 아주 맛있어. 달고... "
"네. 그럼요. 상주곶감 맛있죠"
"역시 아는구만... 거 곶감 좀 내어와요"
어르신이 특별히 주시는 곶감이기도 해서 두 개까지는 맛있게 먹었다.
딱 그 정도가 좋았는데 어르신 말씀이 길어지면서 곶감을 더 내어오셨다. 그리고 말씀 중간에 "더 들어요. 우리는 많이 먹었다니까..." 연세 많으신 분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꾸 권하시는데 마다할 수 없어 너댓개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허허 문사장 곶감 좋아하는구만... 이거 마저 들고 가요. 괜찮아. 아직 많아"
나는 너무 지체되기도 해서 남은 한개를 마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다. 얼른 내려가서 쓴 커피 한 잔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두 분께 나는 '곶감 좋아하는 문사장'이 되었고 찾아뵐 때마다 불문곡직하고 어김없이 곶감을 내어놓으셨다.
어느 동네에서나 흔했던 감나무다.
다 따지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두던 어르신들의 너그러움이, 동치미속에서 익어가던 외할머니의 손주사랑이 그리고 엄마의 젖가슴을 떠올리게 하고 졸음을 몰고오는 감이다.
까치에게도 내어줄만큼 넉넉하게 달려 떫었다가 단감으로 익어가고 마침내 홍시가 되고 곶감이 된다. 나는 말랑한 홍시로 익고 있을까, 처마에 매달려 한풍을 맞고있는 곶감일까.
감이 내 어릴적 아까징끼처럼 빠알갛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