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포기는 빨라지는데 많아지는 건 눈물이고 깨닫는 건 내 한계다.
앙상한 갈비뼈의 흑인 아이를 클로즈업하는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예전 세월호 아이들의 동영상은 보다가 꺼버렸었다. 유난히 큰 눈망울과 긴 속눈썹에 앉은 파리를 보는게, 기울어진 선실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건 고역이다.
그러고보니 담력도 약해진 게 분명하다. 아니면 비겁해지고 있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지만 딸아이는 밤을 새고 날이 밝을 때까지 자고 있을 때가 많다. 자연히 자주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어느날 늦은 저녁을 먹다가 소파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딸에게 물었다.
"너 무슨 동아리에 들었니?"
"인권동아리인데 여성, 장애우, 성소수자 뭐 그런... 근데 요즘은 학교를 못가서 자주 만날 기회가 없어요. 그런데 왜요? 갑자기...."
"그런거 같아서.... 가끔 너 통화하는 내용이 그렇더라"
"오~ 아빠 예리한데...."
유기견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다니더니 느닷없이 한밤중에 망고를 데려온 아이다. 적당히가 없어 걱정스러운 면이 있는데 요즘은 여성인권과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두는 눈치다.
대화는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은 것은 평소 딸아이의 의식을 조금은 알고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또한 별로 없어서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눈 대화에서 나의 어줍잖은 식견과 가식은 이미 들통이 났었다.
"아빠는 동성애자의 인권 탄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동성애자도 당연히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는 게 맞지"
"그럼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문제는?"
"그건... 당사자끼리 사랑하는 거야 자유의지니까 어쩔 수 없지만 합법화는 찬성 안해.... 뭐랄까 그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화와 전통.... 사회적 합의가 이우어져야겠지만......"
"그럼 아빠 이렇게 생각해봐. 동성간이라지만 배우자가 분명한데 한 사람이 아파서 병원을 가야하는데 의료보험도, 보호자로도 기재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만약 아빠 딸인 내가 그렇다면 어떨것 같아?"
"그런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내 자식이 안그렇다는게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야"
"피~ 아빠는 이율배반적이네"
"그래도 할 수 없어. 너도 나중에 부모가 돼 봐 짜샤."
당시는 그리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았고 막연하게 여겼던 문제여서 그랬다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젠더 이슈나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 내 의견을 피력할만큼 확고한 신념이나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언급하기를 주저한다. 내가 여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리고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받는 성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않았으니 그 절박함이 절절히 와닿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식당이 들어섰지만 내 방 창으로 보이는 집에 아나운서 허수경이 살고 있었다. 주차되어있는 그녀의 차로써 머무르고 있음을 짐작했고 한 두번 우연히 마주쳤던 적도 있다. 지금 그녀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했다. 딸과 함께...
큰 눈을 껌뻑거리며 솔직한 발언을 곧잘 하던 사유리라는 연예인의 출산이 화제다. 나는 저간의 사정과 출산소식보다 마흔이 넘은 그녀의 나이에 더 놀랐다. 정자제공 임신과 비혼모 출산이라는 화제성 기사를 넘어선 사회적 담론이 오간다.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나는 당연히 또 한계에 부딪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만약에 내 딸이 이런 선택을 한다면....'
어떤 문제는 머리로써 풀어 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고 이성과 감정이 따로 놀아 혼란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막상 눈 앞에 닥쳐야지만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현실에서 내 일이 아니기만 바라고 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다면, 그동안 뱉었던 말대로 지켰더라면 이 세상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와 논란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는 말아야겠다.
남 일에 왈가불가하기 좋아하고 제 일처럼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나본 그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하릴없는 백수거나 난 체 하고 싶지만 실은 부박한 사람이다.
나 역시 절반쯤은 지나온 길이고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제 앞가림이나 잘하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겠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