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사랑스런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한 배에 낳어도 아롱이 다롱이라더니 남매는 성향도 용모도 다릅니다.
딸아이는 국어와 영어를 좋아했고 예술에 재능이 있습니다. 아들녀석은 수학과 과학을 잘했고 호랑이를 고양이처럼 그리는데다 음치입니다. 아빠와 엄마의 장단점을 쏙빼닮기도 하고 섞어놓기도 한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아들녀석은 틀린 국어 문제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제가 고른 답도 정답같다는 것이지요. 제 누나는 그런 동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딸 아이는 수학을 어려워하고 싫어했는데 제 동생은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 왜 어렵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각자 좋아하고 하고싶은 길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학원 보내는데 인색했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말을 자주 하던 아빠였습니다. 진심이었고 지금도 후회가 없습니다만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앞서 살아보니 수학처럼 답이 하나인 것도 있고 여럿이 될 수도 있는 진짜 인생살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수학처럼 정답을 찾아 헤매는 경우보다 이것도 저것도 답이 될 수 있는 국어 같은 문제들이 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족집게 과외선생도, 처음 해보는 부모노릇을 훌륭히 해내지도 못하는 저는 내색하지 않아도 늘 전전긍긍합니다.
그런데 하나만은 일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 몸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머리만 굴리려 하지말고 손과 발만 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온 몸으로 느끼고 온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쉽사리 무너지지도 겁에 질려 물러서지도 않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해 표정과 손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손을 포개서 상대의 눈과 표정, 몸동작까지 읽어내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과 예기치않은 상황을 겪으며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지렁이나 뱀처럼 사력을 다해 온몸을 비틀며 나아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며, 부푼 가슴을 저어 창공에 떠 있는 매의 눈으로 세상을 꿰뚫어 봐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무엇하나 쓰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머리로만 살아가면 허공에 떠 있는 제 위치처럼 내려다만 볼 뿐 위태롭고 윗 공기만 마시는 껍데기 같은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발로만 살아간다면 울퉁불퉁한 땅과 디디는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며 바닥만 훑으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손이 앞으로 나아가면 나머지 손이 뒤로 가듯 눈으로 읽고 발로 감지하며 온 몸으로 세상의 충격을 흡수해서 감쇠시키며 그렇게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굳센 다리로 땅을 밟고 예리한 눈으로 세상을 읽고 머리로는 이상을 꿈꾸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가끔은 온 몸을 수그려 바닥에 귀를 대어보기도 하고 높이 뛰어올라 더 먼 곳을 볼 수도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이제는 둥지를 떠나 온전히 제 힘으로 날아오르려는 아이들이 마치 솜털을 벗고 깃이 나기 시작한 다 자란 새끼매 같기도 합니다. 혼자 푸덕거리며 날개짓 연습을 합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대로 배운 것입니다.
언젠가는 이른 날에 먹이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둥지를 박차고 오르는 벅찬 순간보다 혹시나 아래로 곤두박질칠까 염려되는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 날은 올거고 와야 합니다.
그날까지 둥지를 맴돌고 지켜봐야겠지요. 비바람을 견디고 먹이를 쫓아야겠지만 바람을 안고 창공에 뜬 채 세상을 바라보고 먼 곳까지 날아가는 매가 조롱 안을 세상으로 여기고 물과 모이를 받아먹는데 길들여진 잉꼬보다는 나을 거라고 믿습니다.
가슴이 부풀고 부리가 굳어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