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두 달이라는데 왠 성화냐고 퉁을 줬다. 아들이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짐 챙기는 걸 도와주느라 부산을 떠는 아내에게 지가 하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거기까지가 딱 좋았다. 아들의 양말과 속옷을 사러간다는 아내를 따라 나섰다. 손수제비와 만두로 점심을 하고 아내는 근처 속옷 매장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팥빙수가 먹고 싶다길래 그리로 가는 중이었다.
"내일 새벽 여섯신데 공항에 데려다 줄려고..."
"그냥 버스 타고 가라 그래. 당신 전에도 새벽에 기차역 데려다 주고 오가다 사고 났었잖아. 그거 땜에 자동차보험료가....." 그 말까지는 안했어야 했다.
아내는 말이 없어졌다. "나 팥빙수 안먹을래"
다음날 잠에서 깨니 아내는 벌써 아들녀석을 데려다 주고 왔다.
전날 괜한 소리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은 나는 팥빙수도 사고 배웅에 대해서는 찍소리도 못했다. 어쩌면 아들보다 엄마가 더 원하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이런 식의 투닥거림이 있다.
아무래도 여자는 이미 엄마로 태어나고, 남자는 아빠가 되어서도 연습만 하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환갑이 다가오는데도 걱정거리고 성질머리 고약한 아들이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예전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고봉밥은 낮아질 줄 모르고 여전히 이불을 당겨 덮어주신다. 나는 이미 성장기도, 이불을 걷어차지도 않는다.
여자는 늙어도 엄마는 늙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딸을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엄마에게 남긴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편지는 매번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 엄마 미안해. 먼저 떠나게 돼서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혔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다른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은 엄마인데 나는 몰라도 한참 모른다.
나무의사 우종영은 속이 썩어서 텅빈 후에야 알게되는 어머니 마음을 느티나무에 빗댔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워낙에 느티나무는 속이 잘 썩는 나무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하늘소 같은 벌레가 들어가 작은 구멍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썩기 시작해 결국엔 속이 텅 비어 버린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전혀 끄떡도 않고 그 육중한 무게를 버텨 낸다는 점이다. "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 우종영>
거친 비바람에도 끄떡 않고, 살의 무게를 견디며 자식을 위해 속이 썩는 느티나무 같은 어머니다. 내가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아빠가 다 그런 건 아니다. 굳이 요즘 젊은 아빠를 가져다 댈 것도 없다.
아빠는 유리창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귓머리 모습을 더듬어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장에서
종칠 때를 기다렸다.
- 피천득, <기다림>
피천득 선생은 1910년 생이셨다. 나는 언제 뒷통수로 아들을 찾는 '창밖의 아빠'였던 적이 있었던가.
몰래 다가가 다 큰 녀석 뒷통수를 때려 발끈하게 만든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같이 뒹굴고 레슬링하던 꼬마 취급을 하면서 다 컸으니 내버려두란 건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태도인가.
아무래도 나는 후진 아빠다. 앞으로는 둘의 애정행각에 눈을 좀 감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