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by 문성훈

뮤지컬 한 편을 본 것 같다. 결혼식을 이렇게도 치를 수 있구나. 신선한 자극이라고 하고 싶지만 충격일 수도 있었다.
내심 아직은 젊노라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여울이 흐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스몰웨딩이라고 했다. 결혼식장은 강남 청담동 전철역 근처에 있었다. 요즘 뜨고 있는 핫한 장소라는 걸 내년 4월, 이곳에서 결혼할 또 다른 조카가 말해줘서야 알았다.
예식장의 입지와 건물 그리고 내부 인테리어와 장식을 보면서 내가 스몰웨딩의 의미를 혼자 해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었다.
예식은 언제 저런 걸 다 찍어뒀을까 싶은 두 사람의 영상으로 시작됐다.
그저 이쁜 모습, 간직하고 싶은 추억만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민낯이고 어른들은 민망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직장 회식에서 보인 티셔츠 입은 신부의 막춤 영상으로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이라니.
시작부터 귓전에 큰 징이 울리는 것만 같다.

오늘 결혼하는 조카가 홈쇼핑 채널의 PD라서 그럴 수도 있다. 오랫동안 구상하고 준비했다고 했다. 결혼식장에서 이런 아이디어와 연출을 완벽히 소화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신랑 입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예전의 육사생도 같은 절도있는 걸음걸이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Come and get your love’ 경쾌한 음악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한다.
단상 근처쯤 이르자 사회자가 “이제 민망할 때가 됐죠. 한달을 연습한 겁니다”라는 멘트를 날린다. 사회자는 결혼하는 조카의 직장동료인 쇼호스트라고 했다.

신부는 출현부터 극적이다. 시계탑이 박힌 높은 창에서 쏟아지는 채광을 등지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등장한다. 어느 뮤지컬에서 그런 비슷한 장면을 본 듯도 하다. 거의 3층 높이에서 나타난 신부는 오늘 공연의 주인공이자, 백성이 보고 싶어하던 발코니에 나온 공주 같다. 이제 긴장해서 어깨가 떨리거나 눈물짓는 신부의 모습은 머리속에서 지워야겠다. 그토록 환하게 웃는 신부라니.

주례가 없다. 신부는 백화점에 가더라도 명품관보다는 지하1층 식품관을 찾겠다고 하고, 신랑은 아내의 음식에 맛있다를 연발하겠다는 약속을 낭독한다.
아내가 되어 애플을 좋아하는 남편이 맥북과 아이패드를 살 수 있게 열심히 삼성전자를 다니겠다는 다짐에서는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신부의 직장은 삼성전자다. 요즘 젊은이답다.
남편은 일에 지칠지도 모를 아내와의 여행을 위해 돈과 연차를 준비하겠노라고 화답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이 보인다.

하객에게서 미리 받아 둔 질문지로 행운권 추첨을 한다. 그 질문에 신랑과 신부가 대답하는 시간이다. 추첨에 당첨된 질문자는 상품도 받고 신랑신부와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을 누린다.
신랑, 신부는 이 날 스타가 된다. 짖꿎은 질문이 오가는데 스스럼도 없지만 다들 말을 잘한다. 잘해도 너무 잘한다. 친구들의 축하 공연에 이어 신부가 그렇게 말렸다는데도 기필코 관철시켰다는 신랑의 노래가 이어진다. 왜말렸나 싶게 잘부른다.
그러고보니 꼬맹이때 녀석이 노래 부르는 걸 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 결혼한 조카는 연상연하커플이다. 신랑은 서른이다. 신부가 세살이 많다고 했다.
녀석이 우리집안에서 연상연하 부부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막간의 프로포츠 영상, 친구들의 공연까지 1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만큼 재미있는 공연 아니 예식이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많은 걸 체감한 결혼식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래서 생활양식도,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거나 바뀌기 힘든 것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년 4월 예정된 조카의 결혼식에서는 또 어떤 장면을 볼 수 있을지 기대도 된다. 최근에는 조카들 결혼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조카의 결혼과 어르신의 부고가 함께 오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세대교체다.

1층으로 내려가 가까운 친지들만 조촐하게 식사를 했다. 조촐하다는 의미는 인원수가 제한되었다는 말이다.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이다.
음식은 결코 조촐하지 않다. 랍스타와 스테이크가 포함된 양식 풀코스다.
동기간의 결혼식은 끝난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는 집안 어른 대접을 받으며 식사를 한다. 그 사실이 낯설고 어색하다.
형, 누나 그리고 형수와 매형이 아직 많이 계시지만 같은 항렬이지 않은가. 사촌간이지만 이렇게 다같이 만난 건 오랜만이다. 이야기꽃이 핀다.
어쩌다보니 참석한 최고 윗어른이 된 어머니의 총평은 이랬다.
"무신 예식장이... 꽃이며 눈에 걸그치 게 그리 많노, 얼라들 얼굴도 잘 안보이그로..."
화려한 장식과 조명, 테이블에는 금장 촛대에다 투명이라지만 아크릴 칸막이(코로나 방지)까지 세워져 있었으니 그러실만도 했다. 게다가 차분함보다는 왁자지껄한 퍼포먼스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언제나 예측불가의 답변을 내놓으신다.

얘기 중간에 코로나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코로나에 대한 불만, 마스크도 소용없는데 너무 심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내가 농담처럼 한 마디를 한다.
“이제보니까 한 이십년 지나서 병들어도 좀 걱정을 덜 해도 되지 싶다. 아픈 데마다 찾아갈 의사들이 다 있어서….”
그건 사실이고 새로운 변화다. 이제는 조카들과 조카며느리들의 가장 많은 직업이 의사가 된 것 같다. 아버지대에는 선생과 공무원이 주류였다.
“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니. 안아파야지. 아프면 어떡해…. 얘는” 그 얘기를 하는 누나야말로 아들도, 며느리도 의사다.

그 녀석이 내가 군에서 휴가 나오면 귀대 못하게 내 다리 주변에 조그만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던 꼬맹이였던 게 엊그제같다. 너무 잘 따르기도 했고 내가 가장 많이 놀아주기도 해서 정이 많이 가는 조카다.
식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보고 쫓아와서 인사를 했다. 그런 녀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반가와했다. 이뻐서 그랬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얼마전에 딸을 낳은 아빠이자 의사선생을….

이렇게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어색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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