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해역
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그 먼 바다에서는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닌다네
무등산 비탈길. 꽃 사진을 찍느라 무릎 꿇은 아내와 이리저리 움직이는 꽃과 눈맞춤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공상규 시인의 그윽한 눈길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을 읽었다.
시인은 꽃다발 대신 이 시 한다발을 안겨주며 글을 갈무리했다.
광주선생님 내외분을 떠올렸다. 나의 광주행은 실은 템플스테이 같은 것이다. 선생님의 깊은 법문을 듣고, 보살격인 사모님과는 수다를 떨다 오는 것이다.
근황을 여쭙다가 손뼉을 치며 "너무 잘하셨습니다."를 연발했다. 캠핑용 접이의자 두 개를 사셨다고 했다.
두 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절이나 호수, 바다를 찾으신다. 갑자기 추워지지 않았던들 나 역시 이번 나들이에 영광 바다를 구경할 뻔 했다.
"둘 다 하루종일 아무말 없이 경치만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하는데... 노을 질 때까지 있기도 하거든. 그런데 벤치가 있더라도 우리 둘이 벤치에 앉으면 옆자리에 앉은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뜰 때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언제라도 펴서 앉으려고 샀어."
넘치는 사랑을 베푸시지만, 정작 당신들은 조그마한 폐도 끼치지 않으시려 하신다는 걸 알고 있다. 배려는 친하고 가까운 사람을 위한 마음이 아님을 깨우쳐 주신다.
시를 읽으며 노을이 번지는 바닷가를 등지고 12만 몇천원을 주고 샀다는 접이의자에 앉아계신 두 분을 뵙는다.
당신들 눈에는 나 역시 먼 바다에 풀어놓은 멸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