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인 어르신과 나는 여느 임대인과 임차인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관계다.
2002년 입주했으니 햇수로 20년이 다되어가는데 계약서 갱신을 딱 한번했었다. 갱신 역시 내가 법인으로 명의를 바꾸면서 부탁드린 것이고 그 긴 세월동안 임대료 인상도 통 말씀이 없으시길래 내가 알아서 관리비를 인상하는 방법으로 올려드렸다.
작년 코로나 사태가 진정 조짐을 안보이자 건물 전체 임대료 인하폭을 상의하자는 전화를 주셨다.
"통화 돼요? 그래 요즘 많이들 힘들죠... "
다른 임차인들의 의견을 들어 본 바도 없고 엉겹결에 받은 전화라서 인하폭을 선뜻 말씀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어르신이 "ㅇㅇ%정도 줄이면 어떨까? 괜찮을까요?"
내 예상보다 하락 폭이 컸다. 모두 만족할거라며 감사인사를 드렸다. 이전부터 다른 층 사람들이 들고 날 때마다 입주가능 여부를 늘 나와 협의하라고 하셨었다. 실정이 그렇다보니 그동안 다른 층 사람들의 오해아닌 오해도 받았었다. 건물주 사장님이 왜 나만 편애하고 모든 걸 상의하냐는 것이었다. 반대로 자신들이 건물주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들은 먼저 내게 찾아와 상의했다.
다른 임차인들이 건물주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사리에 어긋남이 없고 합리적인데 성정이 곧고 무슨 일이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다.
제 날짜에 내놓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있으면 직접 장갑을 끼고 일일이 재활용을 구분해서 담고 누군지 알아내서 혼쭐을 내셨다. 어느 해에는 지하매장 임차인이 1층 화장실 쓰기가 불편해서 지하에 화장실을 만들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려 했다. 그런데 당신 건물이니 마땅히 건물주가 해주는 게 맞다고 당신이 해주셨다. 서울 중심가 건물주로는 드문 경우였다.
되고 안되는 선이 예리하고 그 기준은 양심과 도리였다. 편법을 싫어하고 정공법이었으며 애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임차인 중에 그 어르신을 어려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은 나 한사람이었으며 어르신은 그런 나를 각별하게 대하셨다.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20년전 계약하던 날을 기억한다. 부동산 중개인 없이 계약을 했는데 임대차 계약서 문구의 절반이 한자였다. 나 역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임차인 란에 주소와 이름을 한자로 썼다.
“다들 물어보는데... 젊은 사람이 읽는데 어려움이 없나봐요. 잘 쓰기도 하고….”
“아닙니다. 저도 한자를 많이 알지는 못해도 조금 읽을 줄 아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어르신… 필체가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내 고향이 ㅇㅇ인데 어려서 서당을 다녔지요. 동몽선습, 대학, 중용까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안어른 소개로 서울 올라와서 취직한 데가…. 당시에 서당 다닌 덕을 좀 봤지요.”
어르신은 필체도 유려했지만 내리치고 뻗은 것이 당신의 성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계약서 상의 필체와 오가는 대화로서 서로를 먼저 파악했는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계약서를 쓰는 일이 잦다. 간인이 사라지고 날인 대신 서명을 하기도 하지만 계약자의 인적사항은 수기로 작성한다. 구세대인지 모르지만 나는 필체를 예사로 보지 않는다. 인상만큼이나 필체는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비과학적인 경험상의 주관적인 데이터다.
연필을 쥐기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시대다. 왠만한 서식과 문구는 프린트로 출력한다. 일로써 만나 막역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 성실하고 반듯하며 경우에 어긋남이 없다. 그의 건물의 리모델링 했었는데 지금도 한달에 한두번은 꼭 식사초대를 받는다. 그의 가족은 건물 3,4층에 살고있다.
작년 건물2층에 보습학원이 새로 입주했다. 학원강사로 있다가 처음 학원을 차렸다고 했다. 그는 경험없는 원장이 잘 할 수 있을지를 걱정스러워 했다. 방문할 때마다 오르내리며 2층 출입문과 게시판에 붙어있는 출력물을 봤다. 안내문부터 시간표 그리고 화장실 사용까지 문구에서 성의와 잔심 그리고 꼼꼼함이 느껴졌다.
그 날도 저녁초대를 받아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올라오면서 매번 벽에 붙은 프린트물을 보는데 생각이 정돈되고 성격도 정갈하실 것 같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잘 하실 것 같던대요"
"네. 저력이 있으시더라구요. 성격도 깔끔하고 실력도... 본인만의 교육철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처음 하셔서 걱정이긴 합니다. 게다가 하필 시기가 코로나로 영업시간도 줄고 인원 제한도 있을 때 시작하셔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의 고충으로 옮겨갔다.
“입주한지 얼마 안되셔서도 그렇겠지만 임대료를 낮춰달라는 얘기는 없는가 봅니다.”
“네. 아직은… 그래서 혹시 임대료 얘기가 나오면 낮춰줘야 하나 어째야 하나 생각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나는 내 경우를 들어 대답했다. “마침 저도 얼마 전에 건물주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주셨는데……. 그래서 그 분이 견디다가 어렵사리 하는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이미 고심하신다니 ㅇㅇ씨가 먼저 결심해서 그 분의 부담을 덜어드리는게 모양새도 좋고 훨씬 나을 겁니다. 짐작컨대 경우가 없으신 분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무척 고마워해서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은대요”
“네. 말씀을 듣고보니 그렇겠네요. 알겠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시 방문했을 때 물어봤다.
“참. 임대료는 잘 얘기 하셨나요?”
“네. 말씀대로 너무 고마워하더라구요. 먼저 말 꺼내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과일 한 바구니를 사들고 오셨더라구요.”
“잘하셨고 잘됐네요.”
말은 글보다 빠르고 가볍다. 허공에 지체하는 시간이 순간에 불과하다보니 책임지지 못할 말을 쉽게 뱉는다. 다루기 쉽다고 여겨 자신을 포장하고 남을 속이는데도 부담을 덜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하면 글은 느리고 무겁다. 흔적을 남기니 쉽사리 써내려가기 힘들다. 말이 먼저 달려간다면 글은 머리속 거름망에서 통과하느라 뒤처지기 마련이다.
옛 성현의 말은 사람의 입을 징검다리삼아 와전되기 일쑤지만 당신들이 남긴 글은 다양하게 해석되며 그 깊이와 광채를 더한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글이 가진 엄중함과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무조건 반사라면 글은 의식적 반응이다. 그래서 말보다는 글이 누군가를 파악하는데 더 주효하고 신뢰성을 가진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컴퓨터가 정확성을 떨치는 시대에도 'hand made'는 더 각광받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앞으로 수백 수천의 폰트가 더 개발된다해도 손수 쓰는 글씨의 아우라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실보다 가는 신경을 타고 근육에 전해져 남기는 흔적이기 떄문이다. 한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능과 감수성, 신경과 감각이 그대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을 느낌적 느낌으로 필체에서 사람을 읽을 수 있다. 모르긴해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옛 선인의 지혜로만 사장(死藏)되지 않을 명구인 것이다.
나는 시민의 위대함과 선한 영향력의 위력을 믿는다. 시민은 국민, 대중, 군중에 속하지만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이성을 지닌 깨어있는 주체적 자유인을 따로 칭하는 말이다.
그들의 합리적 의사결정과 불굴의 자유의지가 인류 역사를 진보하게 했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삶의 지혜와 역사가 준 교훈을 잊지않고 탁월한 지성과 예리한 직관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 세계를 몰아친 코로나의 파급력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위대하고 고고하며 영원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선한 영향력은 희망의 싹을 틔우고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
나는 건물주의 배려에 감사했고 마음에 담아뒀다. 그것이 좋은 인연을 타고 전해져 나와는 무관한 같은 처지의 임차인에게 비슷한 기분좋은 경험을 하게 했다. 아마도 그의 경험이, 선한 영향력이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가고 전해질 것이다.
이것은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가시게하는 사랑의 릴레이다. 온기와 쾌적함은 사람다운 사람끼리 기대고 포개는 선행의 도미노로 전해진다. '사람사는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