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읽기

우연히

<한산 : 용의 출현 2022>

by 문성훈

"영화보러 갈래?"

"무슨 영화?"

"한산"

"재미있대?"

"그건 모르겠는데 호불호가 갈려서 한번 보려고...."

느닷없고 무계획적이며 예약제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답게 불과 1시간 후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며칠전 우연히 <T-34>라는 러시아 영화를 봤다.

밀덕까지는 아니지만 'T-34'라는 이름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선봉에 이 러시아제 'T-34'탱크가 있었다.

영화는 2차세계대전 중 독일 전차를 상대하는 러시아 전차장의 신화적인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러시아 영화사상 최대 수입을 올렸고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나는 그저 그랬다.

국내영화와 비교하자면 러시아판 <명량>이다. 해상전에서 거북선은 육지전의 탱크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평과 혹평은 자음 하나 차이다.

<한산 : 용의 출현>은 세평이 이 두 구간을 심장박동 펄스처럼 오가는 영화인 것 같다. '그저 그렇다'는 평보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이미 먼저 관람한 사람들의 여러 비평을 접하고 보는 영화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객관적인 채점기준을 염두에 두고 문제를 푸는 시험과 비슷하다.


1. 국뽕이 심하다는 평가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러시아 영화 <T-34> 관람을 권한다. 러시아 전쟁 영화중에 국뽕이 덜 심하다는 평판을 듣는 영화다. 그런데 탱크 단 한대로 거의 무적이라고 평가받던 독일 기갑부대를 궤멸시킨다. 우연히도 독일 기갑부대의 탱크는 12대다.

국뽕 측면에서만 보자면 <한산>은 <명량>보다 덜하다. 모든 걸 차치하고 12(13): 133(300), 55 : 73 라는 함대 규모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명량>은 세계전쟁사에서도 극히 드문 케이스다. 지형지물과 조류등 천혜의 자연 조건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천기를 읽어 바람을 활용했던 삼국지의 <적벽대전>과 비견할 만하다.

왜 <명량해전>이 아닌 <한산도 대첩>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함께 한국사의 3대 대첩인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전략적, 군사적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된다는 의미다. 그나마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은 정확한 병력도 기록되어 있질 않다.


2. 고증의 오류에 관하여......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문학에 이르기까지 고증에 관한 지적은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한번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우리는 얼마나 당시에 관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후세에 전해지길 꺼려서 망실된 기록도 있을 것이고 정사가 야사보다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분명 숨겨진 비화도 있을 것이며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지 않으면 몇 줄의 문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사건이 소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2차대전이 배경인데다 기록 필름까지 남아있는 영화<T-34>의 고증을 두고도 말이 많다.

최근의 영화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다. <한산>은 300억이 투입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 절반이 들어간 <명량>의 대성공이 없었다면 <한산>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온전한 거북선을 끌고 올 수 없다면, 당시의 전황을 기록한 필름을 보관하고 있지 않으면서 너무 과한 지적질은 지적허영이나 과시로 보일 우려가 있다.

그럴 바엔 <조선왕조실록>이나 <난중일기>를 읽는게 낫다.


3. 누가 용인가

부제가 '용의 출현'이다. <명량>의 부제는 '회오리 바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명량>에서는 '진도 울돌목'을 부각시켰고, 한산에서는 '거북선'이 실제 주인공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용은 이순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전에 치뤄진 여러 해전에서 승전보를 올린 이순신이지만 가장 극적으로 등장하는 무대가 '한산도 대첩'이다.

그는 이 전공으로 정2품 정헌대부에 오르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4. 판옥선인가 거북선인가

달랑 3척뿐인 거북선의 활약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다. 역사적 기록을 들춰봐도 주력선이던 판옥선의 승리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판옥선의 활약에 비중을 뒀다면 영화적 재미는 감소했을 것만 같다. 아마 다큐멘터리로 제작된다면 판옥선의 구조와 장점, 전투력이 명징하게 드러날 것 같다.

손흥민과 케인의 골이 관중을 흥분시키지만 실제로 골 찬스를 만들고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나머지 토트넘 선수들이다. 이를 정확히 간파해서 선수의 가치를 매기고 작전에 반영하는 건 코칭스태프의 몫이지 관중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명량>에서 돋보이지 않았던 주변 인물들 특히 격군과 의병을 부각한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왜군들 역시 희화화하거나 왜소하게 찌그러뜨리지 않아서 좋았던 것은 덤이다.


5. 실제의 이순신은 누구와 닮았나

이순신역을 맡은 최민식과 박해일을 비교하는 글이 많다. <한산>에서는 왜장 와키자카 (변요한 분)가 더 돋보인다는 평도 들린다.

하나마나한 논란일 수 있다. 영정도 남아 있지않을 뿐더러 기록에 남아있는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묘사도 추상적이다.

다만 그가 남긴 <난중일기>로 추정컨대 말수가 적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문신의 풍모를 지녔을 것만 같다.

속병을 앓고 통증으로 뱃전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 장계를 올린다. 부하 장수의 죽음과 백성의 참상에 통곡하고 인간적 고뇌와 번민에 시달린다.

나는 위풍당당당한 풍채와 겉으로 발산되는 카리스마보다는 예민하고 꼿꼿한 성품, 쉽게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 아우라를 갖춘 인물일 것 같다는 점에서 박해일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흥미로운 점은 와키자카가 역시 이례적으로 자신의 패전을 가감 없고 꼼꼼하게 기록하여 한산도 대첩에 관한 풍부한 사료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를 미뤄볼 때 그 역시 예사롭지 않은 장수였음을 엿볼 수 있다.


6. <명량>의 재판이라는 평가에 대해....

<한산>은 <명량>의 프리퀄 격인 영화다. <명량>속 인물과 매칭시켜보는 재미만으로도 쏠쏠하다. 임준영(택연), 정보름(김향기), 준사(김성규 분)등이 그들이고,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 예컨대 나대용(박지환 분), 어영담(안성기 분), 황박(이준혁), 원균(손현주)등이 영화를 다채롭게 만든다.

그에 비하면 왜군측은 와키자카 (변요한 분)의 비중이 높고 연기가 두드러져인지 카토(김성균), 조재윤(마나베)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

<명량>이든 <한산>이든 앞으로 상영될 <노량>이든 익히 알려진 오래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너무 덧붙이고 윤색하면 고증 시비에 시달릴 것이고 실증적으로만 다루면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 경계선을 줄타기하며 고심했을 감독과 스태프의 노력 그리고 연기자들의 연기에 좀 더 주목하는 것도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관전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내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나는 왜 결과를 알면서도 빠져들고 긴장을 하게되나 몰라. 당신은?"

"나도 재미있었어. 보러오길 잘했네."


영화 <한산>의 러닝타임은 129분이다. 냉방과 음향이 빵빵한 상영관에서 충분히 만끽하고 피서를 즐기면 된다. 많은 의미를 담으려 하거나 숨은 그림찾기에 골몰하지 않기를 권한다.

예전에 "개그는 개그일 뿐...."으로 시작하는 개그 유행어가 있었다. <한산>을 본 한줄 총평으로 대신한다.


"영화는 영화일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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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한여름 목침대신 베고 자기에 딱 맞는 높이인 책이 있다. '글항아리'에서 펴낸 <난중일기 / 박중평>이다.

자식들한테 으시대기에도 참 좋다.

"아빠. 이거 읽은거야?"

"그럼. 한국인이라면 당연한 거 아냐?"(설사 안읽었어도 상관없음. 애들 야코 죽이는데 직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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