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부장 이야기'에서 백정태 상무가 김낙수 부장에게 호통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너는 일을 하는 게 아니야, 일을 하는 기분을 내고 있지."
똑똑한 팀원들 데리고 형식적인 회의나 하며 리소스를 축내고, 그 결과 성과 저하로 이어지는 팀의 현실을 꼬집은 얘기다. 이 장면이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 올리게 한다.
하루는 대표님이 임원들에게 숙제를 내주셨다. “정기적으로 하는 회의 중, 안 해도 되는 회의 하나를 골라 메일로 보내주시고 실제로 없애보세요.”
숙제를 받은 임원들은 모두 당황했다. 성과 관리를 위해선 회의가 필요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회의를 없앤다는 건, 어쩌면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나는 회의 하나를 없앴다. 과제원 전체가 참여하던 주간 회의를 중단하고, PL들로부터 서면 보고만 받기로 한 것이다.
처음 몇 주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과제 진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계속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와 자료 준비에 쓰이던 시간이 각자의 개발 업무로 돌아가면서 성과는 점점 좋아졌다. 한 주라도 빠지면 큰일 날 것 같던 회의가, 사실은 임원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요식행위에 가까웠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임원이 “간단하게라도 한 번 보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조직 전체의 리소스가 영향을 받는다. 곧 팀장, 부장, 차장 등의 순으로 회의 주체가 겹겹이 생기고, 수십 개 버전의 자료가 만들어진다. 그동안 다른 일들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임원의 말 한마디가 조직의 워크플로우 전체를 틀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임원은 늘 ROI 관점에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한 마디가 만들어낼 Return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조직의 시간과 에너지는 얼마인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나는 회의를 없애고, 대신 시스템을 만들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스몰 톡을 할 수 있게 내 일정을 공개하고, 과제원들의 업무 흐름에 최대한 맞췄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회의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이었다.
몇 주가 흐른 뒤에야 대표님의 큰 그림을 알 수 있었다. 리더는 무엇을 더 할지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임원이 일을 한다는 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조직의 리소스를 사용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다. 그래서 더더욱 ROI (Return on Investment)를 따져봐야 한다.
바쁜 사람들을 불러 회의체를 만들고, 자료를 잔뜩 준비한 뒤 “오늘도 일 많이 했다”고 보람을 느끼는 임원분들이 있다. 나 역시 한 때 그랬다.
요즘은 그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과 행동이 정말 Return에 기여할지, 아니면 단지 내적 안정을 위한 감정의 카타르시스인지.
때로는 더하기보다 '빼기'가 더 큰 성과를 만든다는 걸 깨달은 게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