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대부분 이렇게 믿는다. 신은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발견해 간다. 그래서 질문은 항상 같았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신은 왜 이런 일을 일으키는가. 이 질문에는 하나의 공통된 전제가 있다. 신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흐름을 따라오면, 이 전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고통이 질문을 만들었고, 불안이 의존을 만들었으며, 의존이 신앙을 만들었다.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신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신은 발견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발견되는 것이라면, 인간은 찾는 존재다.
더 믿고, 더 기도하고, 더 의지해야 한다. 답은 언제나 밖에 있다. 그러나 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은 외부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구조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멈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건 거짓 아닌가. 그러나 이 생각은 다시 질문되어야 한다.
만들어진 것은, 반드시 거짓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우리가 따르는 법,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 이 모든 것도 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것들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신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신은 존재 여부로만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다.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신을 어떻게 다뤄왔는가다. 우리는 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의지하려 했다. 구조를 보려 하지 않았다. 뜻을 따르려 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의지는 인간을 멈추게 하고, 이해는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신을 발견하려는 태도는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려는 태도는 인간을 능동적으로 만든다.
이제 우리는 전환점에 서 있다. 신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변화는 생각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위치를 바꾸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신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찾는 존재가 아니다. 만드는 존재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기도의 의미가 달라지고, 신앙의 방향이 달라지며,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새로 정의된다. 이제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누가 해줄 것인가. 대신 묻는다.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다음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신을 만들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