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지식을 갖추는 이유

상속, 경제, 지식의 사회적 책임

by 바루다

우리가 살면서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남긴 재산을 상속 받아쓴다는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만일에 명분이 없이 모르고 받아서 그냥 쓰고 있다면 그것들의 의미도 사라져 버리고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된다.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이 어떻든 간에 자연의 법칙에 따라 어떠한 오차도 없이 반드시 지불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들이 유산을 남기면 그 유산이 어떠한 성격이 있느냐 하면 그분이 다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데 그 유산을 쓰라고 물려주는 것이다. 사람에게 크고 작은 경제가 있는 것은 이 사회의 것으로 뭔가를 하기 위해 관리하는 것이다. 이 경제라는 에너지는 백성이 힘들게 일해서 만들어지고 그것을 사회가 관리를 하고 크게는 나라와 인류의 것이다. 여기서 나라와 인류의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마치 자신의 몸처럼 팔과 다리로 분리된 것 같지만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얼마큼 가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뭔가를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뭔가 남보다 잘나고, 경제를 많이 가지거나, 지식을 많이 갖추었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것은 일반 백성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달라고 백성들의 경제를 운용하게 해 준 것이다. 경제도 에너지이고 지식도 에너지이다. 지식인들이 지식을 갖추는 동안 백성들이 노력한 것을 사회가 거둬서 누군가를 통해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서양에서 들어온 성장하는 경제 메커니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깊이와 원리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외우고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근본 원리를 알아야 된다.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원리를 찾아 서로 토론을 하며 그 근본을 보고 알 수 있게 해야 된다. 일반 백성들은 힘들게 일해서 모이는 경제를 거둬서 경제인들이 운용을 하고 지식인들이 지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서 더 잘 살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자신이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는 관심도 없이 정처 없이 살다가 자신의 욕심으로 이루지 못한 것에 집착하며 죽는다.


마치 나라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뭐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더 많이 챙기려는 고위 관료와 다를 바 없다. 그 백성들의 피와 땀의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사회이다. 지금 우리는 고위 관리들에게는 이것을 적용하지만 자신들에게 적용하려 들지 않으니까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자신이 할 일이 뭔지도 모르니까 자꾸 남하고 비교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병이 오고 삶이 어려워져서 힘든 일을 겪는 엄청난 삶의 굴곡이 생기는 이유가 뭔지는 알고 살아야 하는데 지금 모르고 살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몸이 아프다는 것은 지금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이것을 방치하면 더 큰 병이 되어 수술을 받아야 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자신이 뭔지 모르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이 환자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아픈 것은 왜 그런지 찾으면서 마음이 아픈 것은 상대의 탓을 한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까 고인이 유산을 남겼는데 그것을 자신이 상속을 받아서 쓰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고인이 뜻일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거나 살면서 자기 할 일을 못했다면 그가 남긴 것으로 그를 빛낼 수 있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서 그도 함께 빛나게 해 줘야 된다. 그의 뜻도 모르는 사람이 재산의 지분만큼 상속을 받아서 노력 없이 생긴 돈이 자신에게나 사회에 바르게 쓰이겠는가? 상속을 받으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 한 팀이다.


크게 말하면 동시대에 태어난 인류는 지금 하느님의 몸을 이루는 한 팀워크이고 작게 들어오면 나라는 몸의 어느 부위에 해당하는 팀워크이고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각자가 세포이면서 팀을 이루어 유지된다. 우리에게 있어 물질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쓸 때는 자신이 그만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위로 갈수록 아래를 위해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야 하는데 무시를 한다. 무시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고 배우고 갖춘 것이다. 우리가 어린아이 일 때는 자신밖에 모르고 무지하다. 하지만 점점 의식을 넓혀가면서 가족을 알고 이웃을 알고 나라를 알고 인류를 알아간다. 자신의 의식이 확장될수록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모르고 자기 눈앞만 보면서 순간순간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도 이러한 원리를 알고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온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그 일을 하라고 주는 것이다.


경제를 안주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고 모르면서 욕심만 내니까 주면 사회가 그만큼 비틀어지는데 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냥 욕심을 내고 죽도록 열심히 하면 주기도 하는데 줬다가 바르게 안 쓰면 다시 거둬가는데 이때 놓지 않으려고 하다가 죽거나 병원에 간다. 우리는 사기를 당하면 사기꾼만 나쁘다고 하는데 돈을 쌓아놓고 쓸지도 모르는 이런 사람들 것을 거둬가는 하늘의 사자들이다. 에너지를 줬는데 그것을 쓸지를 몰라서 그것을 거둬서 다른 곳에 쓰려고 가져가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백성들은 일정한 수준의 경제만 주지 더 이상 안 준다. 조금 경제가 들어오면 자신이 뭐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잘난 척 엄청하다가 사기를 당하거나 아파서 그 돈이 나간다. 우리가 이제 알고 살아야 되는 때가 되었다. 몇천 년 전에 우리는 몸의 어디가 왜 아픈지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병원에 가면 알려 주듯이 마음이 아픈 것도 마찬가지고 병원 대신에 종교에 가서 그들에게 묻는 것인데 지금의 종교는 신앙을 하는 곳이라서 그 역할을 못한다.


상속의 의미를 잘 살리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던지 아니면 각자의 지분을 유지하면서 누군가 할 수 있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등 원리만 안다면 여러 방법이 있다. 재산을 남긴 분이 자신이 잘 사는 것을 원한다면 그 또한 그분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잘 산다고 하는 것도 사회에 뜻있는 일을 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사회의 존중이나 존경을 받고 사는 것이지 물질적인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좋다가 말다가 하는 것은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은 모을 때만 보람을 느낀다. 다 모이면 바르게 쓰이지 못하면 나가면서 치고 나간다. 지금 우리도 우리의 조상들과 가족, 선배들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사회 인프라를 상속받아서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더 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은 턱도 없는 소리다. 욕심으로 더 가지려 하면 조금 들어오는 듯하다가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경제는 잘 쓰는 사람들의 몫이다. 자연은 잘 쓰는 사람에게 경제를 주고 또 창고지기에게 경제를 맡긴다.


경제를 잘 쓴다는 것은 그 사회를 위해서 질량 있는 일을 하는 분을 말하는 것이다. 지식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뜻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지식을 갖추는 것이지 자기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고 잘난 척하며 살다가 죽으려는 목적이 아니다. 경제를 많이 가진 것이나 지식을 많이 갖춘 것이나 둘 다 에너지를 쌓아 놓은 것이다. 이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백성들의 피와 땀이다. 이것을 가졌다는 것은 백성들 위에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뜻있는 일을 분명히 해야 된다.


그런 의무는 모르고 폼 나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니까 자꾸 어려움이 오고 아픔이 오는데 그것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다 어려워져서 힘들게 죽어간다. 자신이 알고 보람 있게 살면 아픔도 사라지고 어려움도 오지 않으며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게 되어 즐거운 삶이 시작된다. 이것이 대자연의 운행의 법칙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목적이 있으니 거기에 맞게 쓰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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