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이 복불복이라면...

선(善) 악(惡)

by 바루다

우리가 선과 악으로 구분을 하는 틀에 묶여서 살고 있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이라 하고 무엇을 악이라 하는가? 우리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오는 환경을 구분 지어서 우리에게 해로운 행동을 악이라 하고 우리한테 이로운 행동을 선이라 하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보는 입장에 따라 반대의 결과를 얻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방편으로 빚어둔 것이다.


이 세상에 인간이 없으면 선악이란 분별이 존재하는가? 만일에 지금 우리가 선이나 악이라 하는 것도 혼자서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들이 계속 선과 악으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현생을 살면서 옳고 그름이라는 것은 뭔가를 하고자 할 때와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할 때 생겨난다. 그러니까 서울에 가고자 결정을 하면 그 외 방향은 모두 그른 것이 되고 또 자신이 위치가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동서남북 중에 하나가 옳은 것이 된다.


이 육신도 없는 것인데 우리 영혼이 3차원에서 필요해서 빚어진 것이지 이것은 없는 데서 빚어진 것이다. 모든 물질들도 없는 데서 빚어진 것으로 있는데 없다고 하니까 헷갈려한다. 이러한 것이 지금 있고도 없다는 것이, 우리가 쓸 때는 이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3차원에서는 이 육신이 필요하고 육신 안으로 들어오면 모든 물질들이 필요해진다. 이것들도 전부 다 방편으로 쓰게끔 하려고 빚어둔 것이다.


우리 기운(인기)이 어떠냐 따라서 대우주는 변한다. 우리 인기가 엄청나게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 환경이 변하는 것도 우리 마음에 따라서 환경이 변하는 것이지 환경이 먼저 변하고 우리가 변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우리가 변함에 따라서 그 질량이 다가오는 것이지 환경이 변하고 나서 우리가 따라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우리 마음이 어떠한 에너지로 돌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한테 오는 에너지 질량이 다르다. 자신의 친구도 달라지고, 친구가 자신한테 대함도 달라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천상에 있을 때 억겁 년 동안 탁해진 원죄를 지은 게 있어서 그것을 대자연 안에서 풀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 왔다. 왜 어떻게 해서 원죄를 지었으며 그 원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깨우치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모든 물질을 만들어 놓고 이 3차원의 모든 걸 빚어 놨다.


이것들의 돌아가는 이 사정을 보고 듣고 분별하고 판단해서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업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바른 게 무엇인지, 알게 하려고 이 대자연의 모든 걸 빚어둔 것이다. 생사에 가르침부터 해서 이런 것들을 우리가 분별하라고 방편으로 이 세상에 빚어둔 것들인데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빚어둔 것을 우리가 지금 답습하다 보니까 우리가 인간이 분별로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다", "무엇이 죄다"라고 지금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살인을 했다고 하면 잔인하면 극악무도한 죄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죽을 일이 없으면 그 상대는 절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 대자연에서 자신이 죽을 일이 없다면 절대 그 상대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논리에 따라서 사람을 안 죽게 하려고 방편을 세운 것이 논리로 극악무도하다고 치우치게 묶어서 뭉쳐둔 것은 살고자 하는 쪽에 본 것이고 지금 고통으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볼 때는 또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천사라 한다면 화를 낼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논리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과 악으로 분별해 놓은 이유가 자신을 기준으로 분별해 가지고 끌고 가기 때문에 반대쪽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망나니 짓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어느 날 누군가 자신에게 망나니라고 욕을 하면 손가락질을 한다.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 했으므로 잘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고 생각해서 그 망나니가 자신을 깨우치고 반성하며 사람을 죽이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 거듭나기 시작을 하면 자신에게 욕 한 상대가 자신에게 악인이 아니고 선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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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그 대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렇게 우리의 분별에 따라 선악이 만들어진다. 자신의 돈을 떼먹었다고 해서 상대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돈을 떼이게 살지 않으면 절대 단 한 푼도 자신의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근본은 알아야 된다. 이 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러면 그만큼 잃고 나중에 이해가 되면 그때 바르게 하면 된다. 그러하듯이 지금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탐구이고 도를 닦는 이유이다.


바른 법을 내놓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것이다. 이때까지 쓰던 법 중에 바른 법이 있다면 지금까지 도 닦을 이유가 없고 이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근본의 법이 없기 때문에 자꾸 더 나은 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서 선악이 존재하게 된 것이지 선악은 본래 없는 것으로 이런 모든 것은 우리한테 필요해서 이걸 방편으로 준 것이다.


지금 자신이 악으로 보는 것은 자신이 그걸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만일에 자신이 그걸 소화할 수 있는 기운을 가졌다면 그 악은 악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악이라는 그 단어로 불리는 그 행동이 악이나 선이 아니고 자신에게 깨우침을 주거나 잘못을 알려주는 거니까 이것은 그냥 고마운 것이 된다. 자신에게 환경으로 오는 세상에 보이는 것, 뭐든지 자신에게 고마운 작용을 하게끔 되어 있는데 자신의 분별로 자신에게 보이는 면을 놓고 이쪽 편을 들어 버리니까 상대적인 개념의 것은 악으로 분별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우리가 동전의 앞 뒷면을 하나로 볼 수 있어야지 마치 한쪽만 동전이라고 하면 다른 한쪽이 동전이 아닌 것이 되어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우리가 하나로 풀어나가야 된다. 하나가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이지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 반대의 작용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자신의 잘못이 없는데 안 좋은 일이 무작위로 벌어진다면 이 세상은 복불복이 되어 우리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


우리가 지금 마음에 안 들고 뭔가 갑갑하고 불만이 있다면 정확하게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이 돌아서 자신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뭔가를 잘못 먹으면 몸이 아파져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살면서 자신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표시가 안 나는데 이게 언제 표가 나느냐 하면 이것들이 쌓여서 어느 분기점을 넘기면 자신을 향해 올 때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지나면 아픔이 온다.


자신이 탁한 에너지를 내보내지 않으면 탁한 에너지가 돌아서 자신에게 올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때는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이리저리 돌아서 오기 때문에 자신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잘못한 것은 자신의 아픔으로 돌아와서 다 겪어야 된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우리에게 원죄는 있지만 현생을 살면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없다. 그것이 마음이 아파 들어오는 형성이 일어나고 마음이 어렵고 아프니까 기운이 막히고 그래서 차츰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탁한 기운이 30% 들어올 때는 우리는 못 느낀다. 70%의 맑은 기운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탁한 기운이 70%가 되고 맑은 기운이 30%가 되면 이때는 누구든지 느끼게 되어 있다. 50대가 되어 이때는 부딪히면 정확하게 느끼는데 여기서 1%씩 더 올 때는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난다. 그러니까 70%가 되기 이전에는 못 느끼고 있지만 지금 계속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깨우치지 못하는 한 계속 돌아와서 쌓인다. 이게 자연이 법칙이고 우리의 인생살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느끼지 못하면 끝없이 조이고 공부를 시키려고 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은 자신의 몸도 망가지고 사상도 망가지고 뭐든지 전부 다 허물어져 간다. 오행도 허물어져 가고, 마음도 무너져가고, 욕망도 정확하게 허물어진다. 우리 인간은 절대로 거꾸로 가는 데는 강하지 않다. 바르게 갈 때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에너지가 된다. 지금 우리한테 오는 어려움은 전부 다 자신이 스스로 지금 분별을 바르게 하지 못해 잘못한 기운이 돌아다니다가 오고 있음을 알고 절대 누구를 원망을 해서는 안 된다.


남 탓을 하고 원망을 해도 좋은데 원망을 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가중되니 자신이 견뎌내야 된다. 자연의 이치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이 환자인데 자신이 힘들고 아픈데 왜 다른 사람을 탓하는가? 자기 잘못을 모르고 남을 탓하면 자신의 목은 더 조여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그걸 깨우치라고 자꾸 채찍질을 하고 표적을 주는 강도가 높아지는 것인데 강도가 높아지니까 더욱 욕을 하며 거품을 물면 풍이 들어와 몸을 끌고 다녀야 된다. 하여튼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면 성인병이 온다.


자신이 탁해지면 탁한 음식을 찾아 먹고 기운이 맑아지면 맑은 음식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먹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몸에서 탁한 음식을 당기기 때문에 행동이 바르게 안 되게끔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바르게 알고 자신이 지금 어려운 원인은 자신에게 찾아봐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갈 때 이제부터 기운을 다시 보내주기 시작하고 대자연의 기운이 자신의 편이 되어서 어려움을 걷어 주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선과 악을 분별을 해서 정할 그런 자격이 우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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