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새내기 시절은 있다
나는 그림책 활동가다
누구라도 새내기 시절은 있다
2024.10.22 박지선
“나는 그림책놀이 강사다”
얼마 전에 명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상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호랑이 명함집을 꺼내 명함을 넣었다. 아! 이 뿌듯함은 무엇일까? 고작 명함 한 장인데 이렇게 뿌듯할 일일까?
올해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났고, 작가님이 출판사 담당자와 인사를 시켰다. 담당자는 명함을 달라고 했다. 그 때 나는 명함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아! 명함이 필요 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나도 명함을 만들어야 할까?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명함에 대한 고민도 잠시,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나의 블로그와 이메일로 수업의뢰가 들어 왔다. 깜짝 놀랐다. 나를 어떻게 알았지? 너무 떨리는 마음에 답장을 보냈다. 한 수업은 다른 수업과 일정이 겹쳐 아쉽지만 포기했고, 한 수업은 멀지만 강사료의 매력에 수락했다. 그리고 명함을 만들까 말까의 고민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나는 명함 있는 강사가 되었다. 지금 나는 도서관과 초등학교 늘봄강사, 그리고 지역 아동센터로 그림책 수업을 나간다.
몇 년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시작은 순수한 자원봉사였다. 그렇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시작한지 어느덧 6년이 지났고, 코로나시기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100회를 넘겼다. 매주 1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것이 100회라니 꾸준하고 성실했던 내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어떤 책을 읽어야 아이들이 좋아할까? 무엇을 만들어야 아이들이 흥미로워할까? 어떻게 읽어줘야 하지? 매일을 고민하고 공부했던 시절이다. 아이들 앞에 서면 똘망똘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어주던 내가 이제는 PPT 자료를 만들고,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문가가 되었다고 찐하게 느껴진다. 내가 즐겁고 행복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아마추어 봉사자가 지금은 어엿한 전문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그림책 강사가 된 것이다.
나는 그림책 활동가이자 독서 활동가 이다. 사실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지만 몇 해 전 바람과 아이들 출판사의 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작가와의 크로스인터뷰어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새로운 도전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요청에 응했고, 그때 출판사 담당자가 ‘독서활동가’로 부르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새내기 독서 활동가가 되었다. 그 이름 한마디에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
오늘 초등학교 늘봄 수업은 학부모들의 참관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10명이나 되는 학부모가 참여했다. 깜짝 놀라면서 처음 수업할 때보다 더욱 긴장된 마음으로 수업을 했다. ‘만족스럽다, 열정적이다, 수업 내용이 좋았다’는 긍정 평가와 일부 아이들하고만 수업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는 평을 남기고 끝난 학부모 참관수업.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를 제대로 느낀 시간이었다. 당당하게 ‘나는 그림책 강사야’ 라고 말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더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수업에 대한 피드백은 강사로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놓치는 부분을 객관적으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자원봉사가 아닌 첫 강의료를 받고 수업하던 날이 떠올랐다.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잘하고 있는지 계속 의심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나만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연습하고 연습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앞에 섰을 때의 긴장과 떨림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 조금은 뻔뻔해져 가는 중이다. 수업준비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이렇게 나도 찐 강사가 되어 가는구나 싶다. 학부모님들의 정성스런 피드백으로 잠시 안일해졌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초보에서 전문가로 넘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뿌듯하지만 자신감도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충분히 전문가라고 불러도 된다고 옆에서 아무리 말해줘도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전문가일까? 그때 내게 힘을 줬던 책이 있다. 바로 권오준 작가의 [새내기왕 세종]이다. 권오준 작가는 <새내기 왕 세종>에서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에게도 새내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한다. 역사의 위인으로만 만났던 세종대왕의 새내기 시절이라니 흥미로워 읽어보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위대하다.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 같다. 완벽한 왕 자체로 느껴지는 왕 세종대왕도 실수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작은 칭찬에도 뿌듯해하는 모습을 그렸다. [새내기 왕 세종]속의 세종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근하게 다가왔다.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따뜻한 성품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먼 곳의 임금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인물로 느껴졌다. 세종대왕도 그랬다는데 범인인 내가 실수하는 것쯤이야 당연한 일 아닌가? 위로도 되었다.
세종대왕은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형 양녕대군은 세자로 왕이 될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이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양녕대군의 폐위와 세종의 즉위는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던 양녕대군과 갑자기 왕이 되어 급성으로 왕의 교육을 받게 된 세종이 양녕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요소다. 태조는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며 왕으로서의 자질을 키우는데 멘토 역할을 해준다. 잘못할 때는 호된 꾸지람과 잘했을 때는 칭찬을 해주며 새내기왕 세종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우리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도망칠 수도 있지만 세종대왕처럼 받아들이고 부딪치고 당당히 맞설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림책 강사가 되겠다고 결심 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강사들에 대한 질투나 부러움도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조바심에 더 실수도 많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임금이 되면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던 세종도 실수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성군으로서의 자격을 갖춰가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더 재미나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도움이 되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동화 구연 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좋은 그림책 선정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하게 그림책 관련 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림책 강사로서 자질을 키우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위대한 왕 세종도 좌충우돌 새내기 시절을 이겨내고 성군 세종대왕이 되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 지금 우리에게 세계 최고의 글자를 남겨준 것이다. 내가 세종대왕처럼 위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실수투성이 새내기의 시절을 거쳐 당당하게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다.
새내기는 시작점의 기대와 두근거림도 있지만 두려움도 함께 온다. 그 때 [새내기 왕 세종]을 생각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면 어느 순간 베테랑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주변은 종잇조각들과 그림책이 널브러져 있다. 나는 그림책 강사니까 당연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이번에는 뭘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좋다. 나가서 우리엄마는 그림책 선생님이라고 소개한다는 아이의 말에 고마움도 느낀다. 어쩌면 내게 아이들의 응원이 더 힘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자기가 좋았던 그림책을 추천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새로운 그림책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