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2)

by 콩밥

우연한 계기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그분도 글을 쓰신다. 매우 솔직한 글을 말이다. 이 좁은 학계에서 누구든지 관심만 가지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에 그런 글을 내보이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하다.


나는 이 브런치를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공개했다. 적당한 거리의 동료들에게 이 공간을 먼저 홍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모순적이게도 일기장이 아닌 이곳에 글을 쓴다. 익명에 기대어 외부에 닿아있고 싶기도 해서 그렇다.


외부에 내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너무 날 것의 감정은 담을 수 없고 담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이성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싶을 때에는 공개되는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대강이라도 정제된 글은 나중에 다시 읽기에도 좋다. 아마 그분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시는 것이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안으로만 향하는 생각이 속에 고이다 못해 썩어버리기 전에 정제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약간의 점잖을 떨어야 한다. 점잖게 글을 쓰는 것은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예의를 차려 다가가는 것이다. 대체 너(나)는 왜 그러니? 그리고는 온라인 공간을 빌려 누군가 이런 나를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신도 저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정말로 반가워요! 이런 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나는 동질감을 느끼다 못해 내적 친밀감 마저 느낀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염탐만 하던 그분을 학회에서 뵈었을 때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 공간에는 몇 개의 글타래가 추가되어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동경, 본인에 대한 실망, 놓을 수 없는 애증의 연구, 작은 그룹-사회-국가 속에서 본인의 위치, 그런 것들에 대한 글을 읽고 있으니 감히 용기 내어 메일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외람되지만 교수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읽고 있었습니다. 공개된 공간의 글을 읽고 있는데 왜 스스로가 음흉하게 느껴지고 죄송스럽기까지 한 걸까요. 교수님, 세상 어딘가에 저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많은 위안이 되어요. 저도 언젠가는 “정말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게 될까요? 저라는 연구자가 이 학계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티도 나지 않을 것 같은데 교수님도 그런 기분을 느끼신 적이 있으실까요? 답장은 주지 않으셔도 되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교수님과 아는 사이가 되어서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무례한 서신을 보낼 정도로 정신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 이 글은 무례한 내적 친밀감을 점잖게 풀어내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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