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날도 있어서

by 콩밥

뒹굴거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만약 제가 공벌레로 태어났다면 하루에 네 시간은 비탈길을 오르며 배를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며 하늘과 뱃가죽을 번갈아 보고 그러다 지겨워지면 고개를 돌려 풀과 벌레들을 구경하고 그렇게 평지에 다다르면 죽은 척 배를 뒤집고 누워 이런저런 공상으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어제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근 십 년의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학원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저를 약간은 안타까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겨야 할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매일 보는 다른 친구는 제가 소셜 미디어와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크게 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재미있다는데 저는 제가 애써 세상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닌지 혹여 저의 시야가 다른 이들보다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순간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어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난감합니다. 친구들이 골프를 배워 필드에 나가고 좋은 집안의 자제와 사귀고 있다는 이런저런 소식들을 들으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연구실 사람이 저와 담소를 나누고자 대기업과 교수의 연봉에 대해 지도 교수님이 한탄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올리면 저는 적절히 받아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면서도 깎인 연구실 월급과 무급인 학원 수업들을 마음 한 켠에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에 기가 눌릴세라 또 다른 내가 튀어나와 속살거리기를 그래도 너는 가족이 건강하고 서울에 몸을 뉘일 집이 있고 가방끈을 길게 늘일 기회라도 있지 않느냐고 배부른 소리를 하지 말라 나를 붙잡는 거예요.


일론 머스크는 언젠가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떠나버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일 년의 절반이 여름으로 바뀐대도 매일 변하는 하늘과 종종거리며 뛰어가는 까치가 있는 이 땅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 년의 절반이 여름으로 바뀐다면 까치가 러시아로 도망갈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제 앞에 놓여있는 좋은 것들을 두고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답이 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스스로가 조금 많이 싫습니다.


가끔씩 이렇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하루가 찾아오는 이유는 잠이 부족했거나 아침을 안 먹었거나 살짝 더위를 먹었다는 둥의 실없는 것들이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불량하게 맛있는 것들을 먹이고 당이 오르면 적절히 금식도 시켜봅니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면 몰래 집으로 기어들어와 두어 시간을 내리 자보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진실로 원했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해외여행을 갔거나 악착같이 취업 준비를 해서 좋은 기업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이것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 외부 상황에 의한 것인지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과학자들도 확실하지 않으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를 꺼리고, 우울해서 아프기도 하고 아파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당장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일 무슨 실험을 할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 것인지 말 것인지, 아침에 도시락을 챙길지 말지 정도입니다. 그런 선택들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정돈된 상태로 만들어주기를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느끼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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