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엄마는 당신의 일이기에 화가 치밀 법도 하다. 아빠와 엄마가 혼인관계였을 때나 아닐 때나, 집안 경제를 책임져왔고 지금도 가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엄마지 내가 아니다. 50대의 신체로 매일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온갖 결정에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아마 나는 똑같은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가계 지출의 규모가 불어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어쩌다 친인척들의 뒷수습을 하게 되었는지, 학원 선생님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학생들도 몇몇 학원을 나간 이유가 무엇인지, 그 수업들을 메꿀 사람이 나여야만 하는지, 그런 것들을 따지기에 앞서서 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 줄 생각이 없고,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꾸역꾸역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동생은 한쪽 발을 현실에 딛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는 그런 걸 자아실현이라고 부르기도, 단순히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조용히 가꿔나가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섣불리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엄마는 연초마다 새로 사는 다이어리에 <올해의 목표> 따위를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으로는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엄마가 불쌍하다거나 혹은 엄마에게 미안하다거나 화가 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이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는 엄마의 툴툴거림, 날카로움,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두고, 엄마는 말을 꼭 그렇게 하더라 하고 맞받아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순둥한 지렁이도 자꾸 밟히면 꿈틀한다는, 소심한 복수로써 타자를 두들기기 시작했으나 시간도 늦었고 영 싱겁게 마무리를 하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것이 글쓰기의 순기능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나의 브런치를 찾게 될지도 모를 그날을 위하여 도발적인 제목은 남겨놓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