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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수 Feb 06. 2022

이유 있는 오늘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고


  생계를 위해 차례로 동료들을 설득하러 가는 산드라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괴로워한다. 함께하던 동료들이 내가 아닌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말. 예고 없이 맞닥뜨린 그 말에 한없이 나약해졌기 때문일까. 어딘가 겁에 질린 것 같은 산드라에게는 남편과 동료가 건네는 위로와 지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본인의 설득 때문에 곤란해지는 동료들을 보는 것은 나약해진 그녀에게 더 없이 치명적인 일이다. 일종의 힘겨운 임무처럼 동료들을 꾸역꾸역 마주하고 난 후 산드라는 약을 삼킨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하겠다는 동료의 말도 그저 동정으로 여겨지는 산드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복용을 쉽사리 멈출 수 없다. 마치 약을 먹기 위해 동료들을 찾아가는 건가 싶을 정도까지 이른다.     


  그녀가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 그 작은 알약은 단순 신경 안정제가 아니라 좌절이고 또 절망이다. 연이은 동료들의 거절과 뒤이어 따라오는 매몰찬 말들로 불안이 극에 달한 순간, 산드라는 자신에게 남아있던 안정제를 몽땅 삼켜버린다. 절망에 매몰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삶은 산드라가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녀를 구원하려든다. 가망이 없어 보이던 동료가 그녀의 집에 찾아와 그녀를 위한 한 표를 약속한 것이다.     

  투표 바로 직전까지 간곡히 부탁했던 산드라는 끝내 일터를 떠났다. 다시금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굴곡들, 소위 말해 희망 고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녀를 어루만지는 진심어린 연대 같은 것들이 있었으나 정말 그건 고문일 뿐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결말이다. 그럼 산드라는 겁에 질린 채 또다시 약을 삼켜야 할까? 작지만 유일한 변화가 그 지점에 있다. 복직이라는 희망은 으스러졌음에도, 산드라는 또 다른 희망을 본 것이다. 어느 청명한 날의 햇살 같이 밝고 부드러운 희망을.  


  삶은 우리에게 평탄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고문하듯 감당할 수 없게끔 만들다 한 톨의 희망을 툭 던져준다. 처음부터 산드라에게 재투표의 기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 껄끄러운 굴곡을 앓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일을 위한 시간, 그러니까 살아내야 할 시간들이 우리 앞으로 그렇게 놓여지는 이유는 어쩌면 산드라가 남편에게 행복하게 외쳤던 말처럼 잘 싸워내기 위해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더 강해져서, 정말 잘 싸워내기 위해.     


  이 영화는 배경 음악이 없다. 산드라의 마음이 비로소 준비되었을 때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될 뿐이다. 몇 곡의 노래, 단지 그런 작은 소란을 일으킬 만큼일지라도 우리는 교차되는 희망과 좌절을 통과하며 성장한다. 기꺼이 부딪힐 자세를 취하며 용감해진다. 결국 산드라의 운명을 판가름할 한 표는 산드라 스스로가 부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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