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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연 Jul 09. 2019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의 존재란

살아계실 땐 몰랐던 그분의 빈 자리

나에게 시어머니는 가끔 생각날 때면, 코끝이 시큰해지는 존재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강북의 낯선 동네를 가다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흘러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이렇게 가끔은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쩌면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짧게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 분이기에 그런 아쉬움도 드나보다. 하지만 그 짧은 2년 동안 며느리로서 느꼈던 감정은 보통의 며느리와 다르지 않았다.      



결혼하자 내 마음이 달라졌다

결혼하기 전 그녀의 얼굴을 본 것은 대여섯 차례 정도였던 것 같다. 아들의 여자 친구로서, 예비 며느리로서, 상견례 자리에서 등 몇 번 되지 않는 만남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를. 딸이 없던 그녀는 나와 딸처럼 지내고 싶어 했고, 그런 마음을 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 그렇게 지내고 싶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자 내 마음이 달라졌다. 나는 매일 야근과 회의, 주말근무까지 해야 하는 바쁜 직장 초년생이었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별다른 일도 취미활동도 하지 않으신 터라 모든 관심은 갓 결혼한 아들 내외에 있었다. 

어머니는 자주 며느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나는 부담스러웠다. 엄숙한 회의 중 걸려오는 전화, 어쩌다 하루라도 쉬고 싶은 주말이면 찾아와주기를 바라시는 두 분이 부담스러웠다. 물론 나는 형식상의 예의와 웃음, 살가움을 장착하긴 했지만 그저 관계의 적정선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결혼 후 7개월쯤 지났을 때, 남편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상사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대구의 한 장례식장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어머니가, 난소암이래…. 좀 많이 진행이 된 건가봐.”     


아랫배가 묵직하고 조금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에게 암은 너무나 먼 얘기였다. 우리 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분들,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암을 선고받은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늘 다른 사람 얘기였다. 그런데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암. 

결혼 7개월 만에 어머니는 59세의 나이에 난소암 3기 말이라는 판정을 받으셨다. 의사는 6개월에서 길면 1년 정도일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너무나 건강한 어머니를 보며 믿어지지 않았다. 5년이고 10년이고 사실 것만 같았다. 암 선고를 받은 후 한 달 후 수술은 잘 받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쯤 전화가 왔다.      


너, 휴가 언제니?”

“아직 회사에서 휴가 얘기는 안 나왔는데요?”

“그래? 그럼 최대한 빨리 도련님이랑 상의해서 휴가 날짜를 잡아야지~.”     


나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서야 시동생과 시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가야 하니 휴가 날짜를 상의해서 잡으라는 말씀이셨다. 

시동생도 전화가 와서 “형수, 휴가 언제로 잡았어요? 형수 날짜에 맞출게요”라고 말했다. 

결혼 후 첫 휴가는 남편과 둘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함께 여름휴가를 가고 싶어 하셨고 

아이처럼 설레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때 느꼈던 마음은  ‘아, 시가는 시가구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도 결국 시어머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를 받고, 하루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결국 나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결혼 후 첫 여름휴가를 무주로 떠났다. 

휴가지에서 가까운 보건소를 찾아다니며 주사를 맞았고, 어머니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를 그렇게 보냈다.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셨고, 소녀처럼 밝고 행복해보였다.

사실 당시 어머니가 아프시긴 했지만 어머니와의 여름휴가는 결혼 내내 계속될 줄만 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게 마지막이란 걸 알았다면 좀 더 잘 해드릴걸, 좀 더 기분 좋게 다녀올 걸’하는 후회가 들었다.      


어머니가 떠난 빈 자리

어머니가 계실 땐 ‘크리스마스에 함께 만나자’는 얘기도,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는 얘기’도 정말 싫었다. 왜 그렇게 갓 결혼한 며느리 마음을 모르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시부모가 없는 친구들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적어도 고부갈등은 없겠다 싶어서. 여름휴가 갈 때 눈치 볼 필요가 없겠지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시어머니가 떠나자 상황은 너무나 달라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화장터에 갔을 때 마치 고아가 된 듯한 심정에 목놓아 울었다. 시아버지가 먼저 갔다면 이런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인 홀시아버지를 챙기는 것도, 함께 준비하던 식탁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명절에도 외며느리이자 큰 며느리인 내 몫이었다.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먼저 떠나고 시아버지만 남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했다. 기존의 내 역할뿐 아니라 집안에서의 시어머니의 역할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온 것이다. 

어머니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제 어머니 안 계시니까, 니가 잘해야 한데이~. 니가 이제부텀 할 일은 딱 한가지다, 시아버지 혼자 되셨으니 잘 모시고, 반찬도 해다 드리고, 어머니 빈자리를 니가 채워야 한데이~”


바쁜 회사생활을 하며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20대 후반의 나이에 모든 짐을 내 어깨에 올리려 하는 친척들이 미웠다. 남자는 마치 여자의 노동력과 보살핌으로 지탱되는 존재인양 얘기하는 것도 듣기 싫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늘 이런 불평들을 해댔다.


어머니가 제사라고 퇴근 후라도 꼭 오라고 그러셔”

“반찬이랑 김치 담궈놨다고 가지러 오라는데 아, 정말 귀찮아 죽겠네”

“시어머니가 애를 봐주는데 내가 생각하는 육아방식이랑 많이 달라서 짜증나”     


나에게는 다 먼 얘기였다. 배부른 얘기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가 나왔다.      

다 준비해놓으시는데, 참석만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명절이고 제사고 미리 장만 안 봐도 얼마나 일이 줄어드는지 아니? 너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네가 제사 물려받아봐. 그게 얼마나 배부른 소린지. 그리고 나는 반대로 반찬을 해다 드려야 하는 처지거든? 반찬도 해주시고 김치도 담궈주시는데 감사합니다, 해야지 짜쯩낼 일이니? 애를 맡길 수 있는 시어머니라도 있지? 홀시아버지한테는 한 시간도 애를 못 맡겨~    


그러자 잠시 숙연해졌다. 귀찮게만 느껴졌던 ‘시어머니’의 존재가 만약 없다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나보다. 물론 나도 그녀가 생존해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아버지만 남겨놓고 시어머니가 먼저 떠난다는 것은 며느리에게 커다란 숙제를 물려주는 일이었다.      


세뱃돈 5만 원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 날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그 뼈를 유언대로 산에 흔적도 없이 뿌리고 내려온 직후였다. 

며칠 후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언젠가 손주가 생기면 입힐 옷가지들과 설날 때 나에게 줄 세뱃돈 봉투가 덩그러니 있었다. 생사의 기로를 오락가락하던 그 순간에도 며느리에게 줄 세뱃돈을 챙기신 것이다. 


시어머니는 설날 즈음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결국 나에게 세뱃돈을 주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가셨다. 나는 조용히 그 봉투를 챙겨서 가슴에 품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살아 계실 땐 몰랐다. 며느리 입장에선 그저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가진 것이 없어서 며느리에게 부모 노릇을 못한다며 늘 안타까워하셨던 어머니였다. 또 며느리에게 사랑을 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말씀하시며, 힘든 항암치료 중에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은 어머니셨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나에게 도리를 하고 싶으셨던 어머니였다. 

아마도 언젠가 강북의 낯선 버스 안에서 흘렸던 눈물은 따뜻함을 남겨주고, 너무 빨리 내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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