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적당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연 Feb 08. 2022

쿠팡 로켓와우회원을 탈퇴하던 날

나는 <최소한의 삶>을 살기로 했다

며칠 전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남편의 이 한마디가 계속 귓속에서 웅웅거렸기 때문이다.


"내가 월급을 000만큼 주는데 왜 항상 부족하다고 그래?"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풍요로운 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버는 돈의 크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만약 100만 원을, 200만 원을 더 갖다준다고 한들 내 마음이 그리 풍요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혼 후 쭉 함께 일을 해왔다. 맞벌이로 오랫동안 일해오며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가정만큼은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여유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뭘까. 왜 가끔 연말에 보너스를 두둑이 받아도 풍요로운 마음은 채 며칠이 가지 못할까. 왜 명절에 부모님 용돈을 드릴 때도,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줄때도 마음이 이리도 팍팍할까. 


약정의 노예로 전락한 삶

항상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장착했던 것 같다. 

'돈은 더 벌어야 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을 더 벌면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은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지금까지 살아왔다. 과연 그럴까?

지나 놓고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더 수입은 늘어났지만(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진 않았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집값은 치솟았으며, 써야 할 곳은 더 많아졌다. 차는 바꿀 때마다 나의 소득 수준보다 더 비싼 차를 사서 쪼들리게 됐으며, 여전히 할부금을 내고 있다. 

새 휴대폰을 구매하거나 인터넷이나 TV를 보려면 각종 약정기간을 설정해야만 했다. 최근 바꾼 폴더블 스마트폰은 24개월,  이사하면서 새로 가입한 TV와 인터넷 결합상품은 36개월의 약정기간이 따라붙었다. 약정 없이 사용하려면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나는 적어도 2~3년은 휴대폰을 없앨 수도, 인터넷을 끊을 수도 없는 <약정의 노예>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마 그 약정의 노예 기간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노예계약을 맺게 될 것이 뻔하다.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이유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무수한 돈들

적어도 난 <구독경제>의 노예가 되기는 싫어서 나름 발버둥을 쳤지만 허사였다. 다른 집에 비해서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는 초라하다. 

쿠팡 로켓와우회원 멤버십을 이용하지 않으면 살림이 제대로 되지 않고, 네이버 플러스멤버십도 따박따박 내고 있다. 구매에 따른 적립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수기냉장고를 샀지만 이 또한 매달 15,900원의 이용료가 붙었다. 


또 스트리밍 음악을 듣기 위해 VIBE에도 구독료를 내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비데, 매트리스, 꽃까지 '구독'을 권하지만 꾹꾹 참았다. 하지만 OTT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라 넷플릭스는 가족 아이디를 돌려가며 무료시청기간을 늘려오다 결국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디즈니플러스, 왓차, 웨이브 등에도 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매년 갱신을 할 때마다 수직상승하는 실비보험료를 비롯해 납입기간 10~20년에 달하는 각종 보험료들, 아파트 관리비... 재활용을 할 때마다 나오는 엄청난 양의 재활용품들.


이 모든 것들에 내 삶이 지배당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삶인데, 이 삶의 껍데기를 벗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뭔가 대단히 소비를 한 것도 아닌데,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을 내기 위해서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슬펐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었구나. 

내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얽히고설켜서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구나.


그냥 모든 약정과 구독과 인연을 끊고 단출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냥 사용하는 만큼 돈을 내고, 먹는 것도 간소하게 줄이고, 옷이나 신발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넘쳐나는 물건들에 압도당하는 삶이 아니라 언제 어디로 떠나든, 이사를 가든 단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쿠팡 로켓와우회원을 탈퇴신청했다. 사실 많지 않은 돈을 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꼭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사곤 했다. 네이버 플러스멤버십도 해지했다. 사면 살수록 더 이득인 서비스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더 자주 배송을 시키곤 했다. 


조금 불편해도 꼭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마트나 시장을 가야겠다. 그날 못 가면 어떠랴. 그다음 날 가더라도 그렇게 아날로그적인 소비를 다짐했다. 

물론 2년의 약정기간 동안 충직하게 휴대폰을 써야 하겠지만, 3년의 약정기간 동안 인터넷과 TV 결합상품을 해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나는 최소한의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카드값에, 넘쳐나는 물건들에,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지는 식재료들에 압도당하지 않고.. 더 적은 돈으로도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내 삶을 실험해보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