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섬, Hayman Island Resort
어렸을 때부터 호텔리어가 되겠다거나, 호텔 산업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딱히 하고싶었던 것도 없었던 고3 시절, 내신과 같은 점수와 기타 등등 조건을 고려하여 그나마 간지가 나 보이는 “호텔경영학과”로 진학했다. 19살의 결정, 그때부터 호텔산업과 지독하게 엮여버렸다.
20대 초반에는 열정과 희망, 기대도 넘쳐서 마치 내가 글로벌 호텔 그룹의 경영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3:3 미팅이나 캠퍼스 라이프와 같은 꽃다운 여대생 시절을 보낼 때, 08년 21살의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관광의 메카인 호주 각지에서 2년간의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붐이었던터라, 쉽게 비자를 받아 저렴하게 어학연수를 하면서 현지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워홀러가 많았다.)
단순히 영어공부를 하자니 미국을 갔어야 했고 호주라는 新기회의 땅에서 호텔경영학도로서 얻어갈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고, 총 2년 동안 3개의 글로벌 호텔 & 리조트에서 로컬 피플과 함께 현장 근무를 하며 영어와 해외 생활, 그리고 지금의 나를 완성한 자아 DNA를 얻을 수 있었다. 길자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나의 2년 간의 호주 라이프는 양적 질적으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특히 세 호텔에서의 경험들은 지금의 내가 이 지긋한 한국 호텔 산업에 발목잡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 Anchor로 작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쳐다도 보기 싫지만, 그 당시 내가 사랑했던 순도 100% Hospitality Hotel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볼까 한다.
*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기본은 '호주를 일도 하고 여행도 하는' 비자이므로, Tax Pay를 하는 회사 또는 사업체에서 일할 경우, 6개월 이상 일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 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Job을 찾거나, 이동하기 싫을 경우 정식 employee가 아닌 cash job을 하며 머무르는 경우도 많다.
Where to begin... 이곳은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이자 호주 동부 퀸즐랜드의 Whitsunday 제도 섬 중 하나로 전세계 1% 상류층들이 즐겨 찾는 휴양 섬으로 알려져 있다. 빌게이츠, 타이거 우즈 등이 다녀가기도 했고 미국BBC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Great Barrier Reef를 2위에 선정하면서 함께 소개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당시 한국 나이로 23살 꼬맹이었고 호주 생활을 1년 6개월 정도 해 온 터라 나름 호텔 업계에서 잔뼈도 굵었고 영어도 꽤 로컬스럽게 할 수 있었다. 비자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일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재미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찾다가 우연히 휘트선데이의 '화이트 헤븐 비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눈처럼 하얀 모래가 7km나 펼쳐져 있는 해변을 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섬에서 마지막 6개월을 보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에 꽂혀 'Seek.com.au'에서 그 근방에 위치한 리조트의 구인광고에 모조리 지원을 했다. Whitsunday 제도 안의 섬들 중에는 데이 드림 아일랜드 리조트(Day Dream Island Resort), 헤밀턴 아일랜드 리조트(Hamilton Island Resort), 그리고 대망의 헤이먼 아일랜드 리조트(Hayman Island Resort, 지금은 IHG 그룹에서 인수하여 InterContinental 브랜드가 붙었다. 하지만 내가 일할 당시에는 로컬 브랜드였음) 등이 있었다. 찬찬히 Job Description을 읽어보며 주변 환경과 호텔 브랜드 벨류 그리고 기숙사 퀄리티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중 가장 하이엔드 격인 헤이먼 아일랜드 리조트 HR과 세 차례에 걸친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호텔 내부 'Oriental(a.k.a Ori)'이라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Staff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리조트 자체는 내 평생 직장이 아니었기에 업무 자체에 대한 Focus는 20% 정도였으나, 제주도의 1/240 밖에 안되는 이 프라이빗하고 작은 섬이 나에게 가져다 준 천혜의 아름다움은 팍팍한 닭가슴살 같은 나의 직딩라이프에 특별함 한 스푼을 추가해 줄 수 있는 평생의 추억으로 남았다. 감사하게도 1박에 90만원 이상하는 럭셔리 호텔에서 일 할 수 있었지만, 이 호텔을 찾는 이유는 일출 무렵 해변가에서 야생 거북이 커플이 내 발 앞에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천사들이 살짝 앉았다 간 것만 같은 화이트 해븐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형형색색의 산호초를 감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연의 선물 때문이었다. 그 유명한 마스타카드 광고 카피를 기억하는가?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MasterCard". 이 광경을 내 눈에 담고 바다 거북이 등을 잡고 수영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린다는 것은 감히 값으로 따질 수 없었다. (당연히 값으로 따질 수 없다. 가는 시간, 방법,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일반 직장인은 엄두를 낼 수 없다T_T)
나는 호화로운 이 리조트를 찾는 글로벌 1% 고객들을 응대하며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천사들의 섬에서 '천국의 삶'을 살며 진정한 Hospirality를 배우고 돈도 꽤나 벌 수 있었다. Off Duty가 되면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이 호텔에 근무하는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워홀러들(Jade, Robbie, Justin, Sarah, Veronica, Hailey 나의 Lovers)과 Catamaran(뗏목배)를 타면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Whitsunday 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포카리스웨트 빛 바다 수영을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천국의 삶'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었고 누가 나에게 가장 빛났던 순간을 물어본다면 바로 이 때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 같다.
Hayman Island Resort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심플한 한 가지인 것 같다. 진정한 Luxury Hotel은 고가의 가치를 지불하는 고객이 우선이 아니다. 그 호텔의 가치를 높여주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그 가치를 전달해 주는 직원들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이 고객가치와 동등하게 여겨져야 한다. 그 상호 레벨이 맞아 떨어질 때, 고객도 그 호텔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경험하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본인의 경험이 더욱 풍부해진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단순히 '이 호텔은 뷔페가 유명하니까 뷔페만 먹어야지, 빙수가 인기인데 빙수만 먹어야지'하는 체리 피커들만 모이는 호텔은 나는 과감히 우햐항 곡선을 그리는 호텔이라고 하겠다. 돈을 지불하는 대상만을 상대로 상품을 만들고 호텔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 옛날의 신분제도 또는 기득권층에만 굽실댔던 탐관오리나 일제 강점기 나라 팔아먹던 앞잡이들 마인드라는 것이다. 헤이먼 아일랜드에서는 한 직원이 브랜드를 대표하고 그 서비스와 정신을 오롯이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한다. 호텔 시설은 물론, 객실이던 주방이던 레스토랑이던 지원부서 간에 그 자신이 호텔 자체의 서비스이고 상품으로써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자존감을 부여했을 때, 그 시너지는 Priceless, Beyond expectation이 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호텔을 보유한 Owning Company 경영진들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업의 본질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9년차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이는 대한민국의 호텔관광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여담이지만, 역대 대통령 후보 中 그 누구도 관광산업 활성화와 개발을 공약/전략으로 내 건 사람이 없었다)
‘The Best Makes the Best'라는 말이 있다.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사람들이 그 다음 레벨의 최고를 양산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비단 소수의 엘리트와 같은 파레토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호텔은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산업이다. 나는 헤이먼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그 브랜드와 업장을 대표하는 큰 가치였으며 나를 만났던 모든 고객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의 경험이 더 풍부해졌다고 자부한다. 실례로 호주 전 외교관, 장관 등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고객들은 투숙기간 동안 나와의 대화와 교감들을 하나의 잊지 못할 상품과 서비스로 여겼고 후에 회사 이름으로 큰 감사를 받은 적도 있다. 나도 고객도, 그리고 회사도 보람과 만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아주 건강한 시너지 서클링인 셈이다.
그리운 나의 헤이먼 아일랜드 리조트. 2010년 천사들이 사는 그 섬에 내가, 그리고 그 시절 나의 사랑하는 크루들이 있었다.
내가 앞으로 쓸 호텔 이야기들은 다른 호텔 리뷰처럼 객실이 몇 개이고 조식 맛이 어떻고, 수영장은 꼭 다녀와야 하고, 커피 맛은 별로였으며 등등의 그닥 흥미롭지 않은 Fact 나열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20대 초반의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을 공유하며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이 한 번 쯤 가보고 싶어할 수 있기를! (당신의 통장잔고를 가지고 값으로 따질 수 있다면...)
※ Hayman Island Resort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353658&memberNo=6345811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