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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wan Sep 04. 2021

인문학 하는 대학원생

나의 <지방시> 이야기


자주 가는 시립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나는 지방대를 나오지 않았고 시간강사도 아니지만 그저 대학원생으로서 저자의 대학원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책을 빌려올 때만 해도 대학원 생활의 소소한 기록이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책의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아팠다. 나 역시 저자와 같이 인문학을 선택한 대학원생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나는 그나마도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취업 안 된다고 죄다 멀리하는 그 인문학을 취업 한 번 해보자고 선택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가고 싶은 길이므로 달리 방법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또한 사치임을 안다. 내 나이가, 경제 사정이, 보장되지 않는 미래가 사치의 이유가 된다. 



이 짤을 처음 봤을 땐 웃었지만 두 번 보고는.. 울 뻔했다.



학부생일 때는 문학을 하고 싶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어학에 관심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고,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어도 큰 틀은 인문학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 틀을 벗어나진 않을 것 같다. 교육을 하고 싶은 이유는 전적으로 학생들이다. 운이 좋아 경력도 없이 대학 교단에 선 첫날, 서른 명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잊지 못한다. 가르치겠다고 교단에 섰지만 가르침을 받은 건 나 자신이었다. 모든 수업이 두려웠고 힘들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설렜고 즐거웠다. 



학생들은 나를 구원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것이 언젠가 젊은 날의 추억이나 감상이 되지 않기를, 계속해서 내 삶의 실재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언제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대학에 남아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지방시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중에서 -



<지방시>의 저자는 학생들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구원까지는 모르겠으나, 학생들 덕에 무척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때까지의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 경험과 감정을 '언젠가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지'라며 흑백 사진을 들춰보듯 아련하게 추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이 과거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붙잡아 두어야 했고 가장 시급하고도 절실했던 방법이 바로 대학원 진학이었다.



한국어 교육 전공으로 진학을 한 후에 지인들로부터 "졸업하고 한국어 교원으로 취직해봐야 학비로 지출한 것도 다 못 벌어들인다" "한국어로 박사까진 필요 없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야 했다. 내가 스무 살에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을 때도 회의적인 반응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던졌을 그 말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내 전공 학문을 비하하는 말들은 참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심지어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 모교에서는 국문과를 폐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학생들이 강의도 듣지 못하고 시위를 해야만 했다. 그 덕인지 국문과는 여전히 자리를 보존하고 있지만 아마 그 이후로도 후배들은 학교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대학원까지 진학한 이유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학생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다. 행복을 위한 시작이었으나 학생, 연구자, 사회인,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해당되지 않는 어정쩡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고난의 시간을 감수해내면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장담도 못한다. 그렇지만 대학원이라는 선택에는 후회하지 않는다. 세간 사람들 말처럼 무모하고 쓸데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시간이 온다면 정말 그렇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 무언가는 배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단 몇 cm 자랄 수 있었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선택해 지금까지 지켜 온 학문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남은 한마디를 하려 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L이 "그러면 버틸 수 있다는 거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가 답을 내주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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