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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정 Apr 08. 2024

출산율 0.65의 진짜 의미

바야흐로 인사 시즌이다. 얼마 전 승진 발표가 났다.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 지난 해 온전하게 일년을 보내고 입사 이래 가장 좋은 고과를 받았지만,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상급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인사팀에 확인해보니 “점수 미달”이라고 했다. 최근 3년개년 고과 평균으로 승진이 결정되는데, 나의 경우 지난해 고과는 좋았지만, 그 이전 2년의 육아휴직 기간이 평고과로 자동 셋팅되어서 평균 점수가 승진 합격점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1년 3개월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결국 2년 승진 누락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사내 인사 매뉴얼에는 ‘육아휴직 1년은 근속 기간 및 직급 연차에 포함됩니다’라고 쓰여있지만, 행간에는 ‘근속연수에는 포함되지만, 승진할 수 없는 고과를 받게 될 것이며, 승진에서는 누락될테니 기대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육아 휴직자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지만, 여성 사회인이 느끼는 현실은 내가 겪은 바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쓰고 복직했던 해에 나는 인사 평가에서 하위 고과를 받았다. 11월에 복직하여 그 해 근무 실적이 없었지만 평가기간 내 재직자라 평가 대상이 되었고, 상급자는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하위고과를 주었다. 이후 ‘이의제기’라는 절차를 통해 상급자와 불편한 면담을 수 차례 거치는 노력 끝에 겨우 평고과(B)로 돌려놓았다. 만일 그 때, 내가 반박하지 않았다면 휴직으로 인해 받은 하위고과가 이후 적어도 3년 혹은 그 이상 나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1년 고단했지만, 재미있게 보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상급자와 업무 스타일도 잘 맞았다. 덕분에 그 동안 해오던 방식과는 다르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다행히 동료들에게도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퇴근 후 육아하러 집으로 다시 출근하고, 출퇴근 버스에서 쪽잠을 자는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집 밖에 나의 공간과 영역이 있다는 사실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더 많았다. 결과적으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며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적인 만족을 찾으러 가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나의 시간을 회사에 빌려주고 회사가 원하는 일을 처리해주면서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 따라야 한다. 회사에서 줄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은 ‘연봉’이고, 이는 승진과 직결된다. ‘엄마는 위대하다, 워킹맘 대단해요,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세요’와 같은 말뿐인 노고 취하가 핵심 보상이면 안 된다는 얘기다.


퇴근 길에 포털 앱을 켜보니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 0.65’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에 걸려있다. 승진에서 연거푸 누락한 나에게는 이 기사가 다르게 와 닿았다. ‘우리 사회가 출산과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더 많은 희생을하고,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하겠어요’라는 2030 여성들의 의지로 읽혔다. 기사 밑에는 ‘애를 낳으면 1억을 주자, 집을 줘라’ 등의 댓글이 달려있다. 실제 요즘 출산률을 높이기 이해 부모 급여가 새로 생기고, 육아휴직 급여 기간이 늘어나는 등  경적 보완책이 요 근래 많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과연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단지 돈 때문일까. 돈을 많이 주면, 아이를 많이 낳을까? 당사자로 경험한 바, 기회 박탈로 인한 상실감이 더 크다. 사실 경제적 부분도 여러 형태의 기회의 박탈에서 비롯된다. 한창 커리어가 확장 되는 시기에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공백기가 생기고, 복직하더라도 휴직기간은 고스란히 고과와 승진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단지, 법이 보장한 제도를 이용했을뿐인데 말이다.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이 이전보다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런 남자는 조직에서 승진을 포기한 사람으로 비춰지기에 선뜻 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first panguin이 될 수는 없어) 이처럼 출산과 육아를 위한 선택이 남녀를 불문하고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면, 리스크를 기꺼이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애를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보여야 한다. 특히나, 출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여성으로 하여금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법과 제도를 보완해나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로 법의 취지가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직장 동료가 육아휴직으로 인해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일과 육아를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육아휴직 다녀온 사람은 쉬고 왔으니 승진에서 밀리는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뭐, 생각은 자유니까.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출산율은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도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 0.6’ 안에 담긴 진짜 의미, 불합리한 현실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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