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상황들
지친다.
어느 순간부터 입에 배어버린 말,
어김없이 늦은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살짝 잠이 들었을 때, 갑작스레 배가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복통이 심상치 않게 느껴져 급하게 운전을 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중 등을 타고 올라온 서늘한 느낌은 어느새 목까지 타고 올라왔고 금세 머리까지 뻣뻣하게 굳어가는 느낌으로 변했다.
그렇게 죽겠다 싶을 즈음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 처치를 받는 도중 정신을 놓았고, 눈을 뜨니 하루가 꼬박 지나있었다.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해야겠다"싶어서 다음날 퇴원을 하려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는데, 선생님은 내게 소견서를 하나 건네주셨다.
“이거 들고 시간 될 때, 거기 적혀있는 병원에 꼭! 가보세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신경정신과 진료 의뢰가 함께 담긴 소견서였다.
그리고 종이에 적힌 병원에 간 후 난, 내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힘들고 아픈 이유가 설명되면서 “내가 아프구나" 수용하는 순간이었기도 했다.
“길 가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죽여주면 좋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
“죽음은 나를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정상적이지 못한 극단적인 생각들과 이유 모를 아픔, 길을 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발이 떨리며 숨을 쉴 수 없이 호흡이 가빠 오는데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눈에 보이는 병원까지 뛰어 들어가 정신을 놓은 후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눈을 뜨는 상황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우울증은 모르겠고, 공황장애는 예전에 같은 증상으로 병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나요?”
“스스로 죽을 생각도 없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상황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도 모르겠구나 생각은 합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이 오가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남들보다 자존감이 높고, 주변에 그걸 지켜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충격도 의아함도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물었다.
“책 좋아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좋아하지는 않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읽는 편입니다.”
선생님은 내게 여러 가지 책 중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꼭! 읽어보길 권고했다.
“이미 읽어본 책인데요?”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으니, 다시 읽어보세요. 분명, 많은 생각이 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을 해보니, 본인이 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만, 약은 함께 드릴 테니 꾸준히 드시고 몸이 아프거나 상태가 안 좋다 싶을 때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뭔가 굉장히 삶에 대한 억울함이 밀려왔다.
끊임없는 생각과 우울하고 불안하기만 반복되는 삶, 멈추지 않는 쓰레기 같은 생각에 도망치듯 침대를 뛰쳐나와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한 후 아메리카노를 노려보며 이 생각을 타고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우울증 때문인 건가?”
“공황장애가 있어서인가?”
“돈 때문인가?”
“가족 때문인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인가?”
“회사 때문인가?”
“과거에 겪은 어떠한 경험 때문인가?”
내게 해당되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결론은 행복과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
나에게 그저 그 '상황'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은 언제나 그렇듯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삶을 관통하며 지나갈 거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