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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족추장 Apr 12. 2020

뒤죽박죽 엄마학교

이렇게 된 바에야 확실하게 해 보자고, 엄마표 홈스쿨링 

코로나때문이었다. 엄마학교가 시작된 것은. 2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 19의 유행은 3월에 정점을 찍더니, 결국 4월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엄마들에게 선물했다. 사실상 개학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질병 앞에서, 기나긴 겨울을 뚫고 봄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줄어드는 가계소득도 온종일 아이들과 집콕하며 씨름하는 땀내 쩌는 일상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세상 그 어떤 위협보다도 '지금 당장 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동안 코로나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핸드폰과 한 몸이 되어 하루 종일 확진자 수를 세 가며 뉴스를 읽고, 신문의 경제면도 들여다보며 극한의 재난 앞에 던져진 인류 생존기를 하루하루 떨리는 마음으로 들여다보길 반복했다. 간간히 아이들에게 밥상이나 겨우 차려주며 말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 한 한 달 정도를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던 녀석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전 세계적인 재앙 앞에서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했다. 


아이들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코로나가 발생한 뒤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자, 지구는 오히려 이전의 생생한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다. 공장이 멈춘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매연 속에 보이지 않았던 산과 강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떠난 해변에서는 거북이 알이 부화하고, 깨끗해진 강물에선 물고기들의 개체수가 늘어났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 다시 자연이 들어서는 모습이다. 빠르게 움직이던 인간의 시계가 멈춰 섰다. 우리 아이들 역시 어쩌면 어른이 만든 시계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엄마의 품이라는 자연 속에서 회복 중이었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의 끝은 묘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난 엄마니까 내 아이들은 충분히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현실 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아이들 때문에 내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현실은 잠시 잊자. 머리를 디폴트 시키고 당면한 과제에 충실하자.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회복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보지 뭐. 엄마와 함께하는 홈스쿨링을 시작하자. 여기까지 생각이 닿다 보니 타고난 걱정인형인 난 어느새 6, 8세 두 아이들과 함께할 하루의 타임라인을 짜고 있었다. 




8:00 기상나팔과 함께 아침식사, 간단한 스트레칭과 명상음악 

9:00 EBS 온라인 수업 

11:00 방과 후 엄마학교  

          1교시 미술놀이, 

          2교시 생활영어, 

          3교시 과학실험.... 악!



매우 의욕적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이 둘의 연령도 제각각인데다 홈스쿨링 노하우도 없이 1교시부터 N교시까지 커버할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잔머리를 굴려 본다. 그래, '통합교육'을 해보자 라고. 아이들도 어차피 N교시 수업을 지겨워할 테고, 프로젝트 위주의 놀이수업 형태로 진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자위하며. 다시 시간표를 짜 보니 제법 그럴싸하다. 




8:00 아침식사, 음악과 함께 스트레칭 

9:00 EBS 온라인 수업 

11:00 뒤죽박죽 엄마학교 

           프로젝트 통합교육

           (미술, 과학, 토론 등 혼합 프로젝트식 교육)  

13:00 점심식사, 음악과 독서 

14:00 뒤죽박죽 엄마학교 2 

           요일별 특화과목 교육

           (월요일 미술, 화요일 영어, 수요일 과학, 목요일 사회, 금요일 역사) 

15:00 마무리 학습 및 자유시간 

16:00 동네 산책 및 운동

19:00 저녁식사 및 아빠의 밥상머리 경제학교 

22:00 취침 및 엄마의 탈무드 이야기



몇 가지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슬쩍 끼워 넣어 본다. 아빠의 밥상머리 경제 교육이라던지 엄마의 잠자리 독서 인성 교육 같은. 물론 '이건 공부요' 하는 방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잘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교묘히 모두 놀이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캐리 언니처럼 애들 혼을 쏙 빼놓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루해하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이미 홈스쿨링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모든 엄마들의 숙제가 되었다. 시대가 부른 엄마의 숙명이랄까. 이 혼돈의 시기에 나와 아이들이 남아도는 시간의 바다 위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수많은 다짐과 함께 이 모든 계획을 실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아마도 이 브런치를 자꾸만 나약해지는 의지를 다지는 용도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내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어떤 것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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