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로익과 청담의 맛을 알려준 나의 쎄오
2019년 언저리, 청담
"나는 이렇게 탄 내나는 게 좋더라. 어때 나무 탄 향이 엄청 나지? 근데 여기 초콜릿도 맛있다."
그 때 나는 서른 세살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듯한 어떤 가을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겁나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것만 같던 나는 흙빛 얼굴을 하고 사무실에서 타자기만 두드리고 있다 정신이 저세상으로 나가기 직전, 쎄오에게 끌려나가버렸다.
그렇게 갑자기 난 청담 어딘가에 앉아 흙빛 얼굴을 하고, 숯향 냄새가 나는 위스키를 들이마셨다. 실컷 입 속을 쓰게 해놓고 초콜릿을 먹었다. 왜 이런 걸 먹지?근데 초콜릿 무한리필이면 마진이 남나? 맛있네..그 땐, 분명히 어른이었지만 어딘가는 젊거나 어렸던 것 같다. 청담동 노른자 땅에서 병 당 40만원짜리 위스키를 파는 집에 초콜릿 무한리필 마진을 걱정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또 그때를 생각하면 기가 찬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내가 일한만큼 술을 사달라며 호기롭게 외치면, 쎄오는 회사 앞 만복 국수집에서 소주를 연신 사주며 바짓 가랑이 잡도록 정신없이 취해버린 나를 데려다 주고는 다음 날 정신없이 놀려댔다. 세상에 분노가 많았던 내가 욕을 하면, 또 그러려니 하던 분이었다. 이게 불합리하다고 말하면, 내 말을 믿어주는 나한테만 착한 일진오빠(?) 같은 그 관계성이 좋았다. 그리 시끌벅적하게 지내던 나의 쎄오는 바로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를 통해 고급 문화를 조금씩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위스키를 병째 저렇게 파는 곳에 가본다거나, 오이스터 바를 가본다거나, 시가와 LP바를 가보는 것 등.
시골에서 자라 서울까지 온 내가. 불과 16년전까지만 해도 용산역에 사람이 너무 많아 엄마한테 무서워 전화했던 내가. 이젠 청담동에서 위스키에 초콜릿을 녹여먹으며 깔깔 웃는 사람이 되었다니, 뭔가 대단한 성공이라도 해낸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그때 철없던 나에게 위스키를 건네며 쎄오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상황은 달랐지만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작은 독립 광고 대행사로 시작해 한강 대교를 걸으며 아낀 돈으로 부득불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던 나의 두 번째 쎄오는 지금 굉장히 성공해버렸지만, 그때는 또 나름 어렸던 것 같다. 우악스럽게 지나가는 시끄러운 밤들을 낭만이라고 여기며 즐거워했던. 나도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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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이 지났다. 그가 처음 알려준 나무 탄내가 가득하다는 그 위스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기억 못하는 위스키 수십병을 지나고서도 뇌리에 박혀있는 '라프로익'을 한 병 사들고 저벅저벅 쎄오실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 새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떠났고, 그는 늘 그랬듯 응원해줬다. 그리고 난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은 모르겠고 월급이나 올려달라던 철부지가 오전 11시 반에 머쓱하게 내놓은 라프로익과 청첩장 앞에 뻘쭘함이 스친다. 그런 나를 알았는 지 그보다 이젠 수십배나 비싼 위스키들을 즐길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말한다.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 스위치라도 눌린 양, 추억을 꺼내며 연신 깔깔거리다 훗날을 기약하며 따스하게 헤어진다. 시간은 지났다. 그러나 인연은 시간을 먹고 흘러간다. 그러니 기억이 존재하는 한, 어렸지만 찬란했던 마음들은 나이가 먹어도 계속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