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랜브로 박상훈 Apr 08. 2024

첫 만남에서 상대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때로는 이게 더 효과적인 마케팅이 됩니다

직접 소유한 도메인의 메일을 쓰시는 분이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그 주소에 방문해 보곤 합니다. 구독자 분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알고 싶어서요. 최근에도 한 구독자분의 웹사이트를 방문했는데요. 웹사이트를 보고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습니다.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화면이 저를 반겨줬거든요. 


여러분도 한 번 방문해 보세요. 아래 주소를 남겨두겠습니다. (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사입니다.) 


https://www.111percent.net/ 


보통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그 사이트의 홈 화면이 나타납니다. 그 회사를 설명하는 짧은 카피 문구와 함께요. 하지만 111%의 웹사이트에서는 주사위 모양의 얼굴을 가진 한 캐릭터가 나타나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주사위를 던져서 1,1,1이 나와야 홈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하죠. 


저는 캐릭터의 지시에 따라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1,1,1이 나왔습니다. (누구나 한 번에 1,1,1이 나오도록 세팅해 두신 것 같아요.) 캐릭터는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덕담과 함께 홈 화면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홈 화면에 들어간 저는 '회사소개'란을 클릭해 봤습니다. 거기에는 큼지막하게 이런 카피가 적혀있었습니다. 

 

‘즐거움을 발명하다’

 

이미 즐거움을 경험한 저는 단번에 이 회사의 슬로건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나오는 캐릭터 (출처 : 111% 웹사이트 캡처)




의외성이 가진 힘  


기분 좋은 의외성은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 의외의 모습으로 나를 웃게 하는 상대를 싫어할 사람은 없죠. 브랜드와 고객의 만남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고객과의 접점을 설계한 브랜드 내부의 누군가가 고객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거죠. 이 접점에서 고객을 미소 짓게 만들면 고객은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호감을 얻은 고객이 마침 우리 브랜드를 필요로 하는 고객이라면 이후 구매까지 가는 길도 조금은 순탄해집니다. 제품의 수준이 비슷하다면 고객은 호감이 있는 브랜드에 돈을 쓸 테니까요. 당장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고객에게 얻은 호감도 그 가치는 충분합니다. 우리 브랜드를 좋게 기억할수록 지인들에게 소개를 할 가능성도 더 커지니까요. 게임에 큰 관심이 없는 제가 여러분께 111%의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것처럼요.


스타트업에게는 고객과의 모든 만남이 소중합니다. 애초에 만남의 빈도가 유명 기업만큼 높지는 않을 테니까요. 빈도가 낮을 땐 임팩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 명의 고객을 만나더라도 우리 브랜드를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죠. 고객과의 접점 곳곳에 작은 의외성을 심어두면 굳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의외성을 심는 3단계 프로세스 


의외성을 심으려면 먼저 '뻔한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당연한 것을 먼저 파악한 뒤 그것과 다른 경험을 설계해야 하죠. 일단 떠오르는 모든 아이디어를 나열한 뒤 그중 가장 우리 브랜드다운 방법을 선택해 실행하면 됩니다. 이를 간략한 3단계 프로세스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고객이 느끼는 당연함 (=다른 브랜드들도 다 하는 것)을 찾는다.
2) 고객을 미소 짓게 할 행동 (=우리 브랜드만이 하게 될 것)을 떠올린다. 
3) 그 행동이 우리 브랜드 가치를 잘 반영하는가? : ‘그렇다’ 면 실행


위에서 소개한 111% 사례를 이 3단계에 적용해 볼까요?  


1) 고객이 느끼는 당연함 : 웹사이트 링크를 클릭하면 홈 화면이 나온다

2) 고객을 미소 짓게 할 행동 : 장난꾸러기 캐릭터와의 짧은 대화를 삽입하자 

3) 우리 브랜드 가치를 잘 반영하는가? : 111%는 '즐거움을 발명하는'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라면 웹사이트 홈 화면에서부터 즐거움을 줘야 한다. 실행하자. 



웹사이트 첫 화면에만 의외성을 심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사용하는 협업툴 [슬랙]은 평소 딱딱한 개발자들의 말투로 가득한 앱 스토어의 ‘업데이트’ 란도 고객에게 의외성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합니다. 


1) 고객이 느끼는 당연함 : 앱 업데이트 란의 문구는 ‘오류를 개선했습니다’ 같은 딱딱한 언어로 쓰인다

2) 고객을 미소 짓게 할 행동 : 업데이트 기능이 쓰일 상황을 언급하면서 더 친절하게 적어보자 

3) 우리 브랜드 가치를 잘 반영하는가? : 슬랙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드는 브랜드다. 우리가 먼저 사소한 커뮤니케이션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야 진정성이 전달된다. 실행하자. 


슬랙의 업데이트 기록 (출처 : 앱스토어 캡처)



앱 서비스를 운영한다면 고객의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과정에도 의외성을 심어 보면 어떨까요? 여전히 많은 앱 서비스들이 첫 화면에서부터 고객에게 회원가입을 요구합니다. 이제 막 만난 사람에게 다짜고짜 신상정보부터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죠. 영어 학습 서비스 [스픽]은 ‘AI튜터’라는 마케팅 메시지에 딱 맞는 방식으로 처음 만난 고객을 회원가입까지 이끌어갑니다. 


1) 고객이 느끼는 당연함 : 대부분의 앱은 켜자마자 로그인/회원가입 창이 먼저 나온다

2) 고객을 미소 짓게 할 행동 : 고객을 '영어 학원에 처음 온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상담을 시작하자

3) 우리 브랜드 가치를 잘 반영하는가? : 스픽은 ‘AI튜터’를 통해 맞춤 영어 학습을 제공하는 브랜드다. 튜터라면 영어를 배우러 온 학생에게 신상 정보를 묻기 전에 상담부터 진행해야 한다 : 실행하자 


출처 : 스픽 앱화면 캡처



유형의 제품을 취급하는 브랜드도 얼마든지 고객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스토어에 방문하는 순간, 제품을 배송받는 순간, 그 제품의 수명이 다해 버려야 하는 순간까지. 브랜드와 고객이 만나는 모든 접점을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의외성을 심을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온라인 /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제품을 분류하는 방식

제품을 설명하는 방식 (상세페이지의 구성이나 독특한 문체, 현장 직원들의 의상이나 말투 등)

주문을 완료한 고객에게 배송 전, 중, 후에 보내는 메시지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

동일한 카테고리 제품에서 발견되는 작은 불편을 개선한 사용성

교환이나 환불 처리 과정

사용 후 폐기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한 설계 

...


애초에 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이런 의외성 포인트들을 적용해 두면, 이후 마케팅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마케터는 수치적 성과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업 자체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업은 고객들이 지불한 돈으로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얻고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케터의 일입니다. 사업 전체의 측면에서 봐도 아주 중요한 일이죠. 


마케팅을 '수치를 개선하는 일' 정도로 여기면 광고 세팅 비법이나 자극적인 카피 스킬들에 얽매여 정말 중요한 걸 잊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당장의 수치 개선을 위해 실제로 고객을 만났을 때 하기 꺼려지는 행동을 디지털 수단에 숨어 행한다면, 결국 마케팅은 사업을 망하게 하는 행동이 되고 맙니다. 


때로는 수치를 개선하는 일보다 상대를 웃게 만들고,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을 더 우선시해 보면 어떨까요? 그 뒤에 나타나는 수치는 얕은 스킬을 적용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크게 개선되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