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함께 삶의 의미도 사라진듯했지만..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대학 3학년 때 난 휴학을 했다. 도저히 대학 4학년을 제대로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토록 원하던 학과의 대학에 갔는데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일을 대학을 졸업하면 하게 될 텐데.. 난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되는 그 순간 되돌아가는 것을 택했던 걸까? 내가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전에는 너무나 확실했던 목표가 어느 순간 안갯속에 가려져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학을 결심하기 전 난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한 전공으로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과연 살아갈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 길이 내 길이 맞는지 과연 내가 졸업 후 그 길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나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대학의 전공은 연극영화과였다. 난 어려서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책, 연극, 그리고 뮤지컬 등 빼놓지 않고 보았고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나의 영혼의 친구였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했을 때는 나 또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햄릿과 함께 아파했다" 줄리엣이 깨어나 죽어있는 로미오를 발견하고 울부짖다가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을 때 내 심장도 같이 찢어졌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 내가 왜 졸업을 앞두고 다른 곳도 아닌 지구 반대편 12시간 이상을 비행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이태리 밀라노까지 가서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 길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이가?! 나 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친언니가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이태리 밀라노로의 여행을 계획했고 부모님을 설득해 이태리행 비행기 표를 샀다. 생전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티켓팅을 하는 것 모두가 내게는 새롭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이태리 밀라노에 가면서 계획한 일이 있었다. 밀라노 두우모 광장에서 1인극을 하는 것이다. 그곳은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이 공연을 하는 곳이다. 밀라노 두우모 광장에서 1인극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건 내가 앞으로 이 일을 졸업 후 에도 계속할 수 있을 만큼의 열정이 있는지를 시험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나의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래서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난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자신이 있었지만 만약 그 반대의 경우라면 미련 없이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나의 꿈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밀라노에 도착한 후 바로 밀라노 두우모 성당 주변으로 사전 답사를 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거리의 예술가들이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난 적당한 자리를 발견했고 며칠 후 그 장소에서 1인극을 하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대망의 그날이 왔고 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한복을 입고 얼굴은 하얀색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그리고 성당 앞에서 준비해 온 작품의 주인공의 독백을 시작했다. 대사는 15분 동안 이어졌고 10분 휴식 후 다시 15분 동안 그러한 독백을 5번 정도 반복했다. 나의 1인극이 지속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박수를 보내고 돈도 미리 준비한 박스에 넣어 주었다. (유럽에서는 모자나, 상자 등에 관람객들이 돈을 넣어준다.)
정말 새롭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건 졸업공연을 제외하고 나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난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도망치듯 날아갔고 그곳에서 난 나의 오랜 꿈인 배우의 꿈을 접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다른 과목은 아니었지만 연기 과목에 있어서는 A+라는 학점을 매번 받을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그런 내가 내 꿈으로부터 도망쳤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글로는 적는데 한계가 있다. 어쨌든 난 내 인생 처음으로 꾸었던 꿈을 포기했다.
그 뒤로는 꿈이 없었다. 런던에서 돌아와 영어 공부에 올인해서 영어 강사가 되었지만 영어 강사가 되는 것이 내 꿈은 아니었다. 영어 강사는 정말 취업을 위해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었을 뿐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꿈을 포기한 그 순간부터 난 나의 원래 모습보다 한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만 모른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의 슈테파니 슈탈 작가에 따르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천부적인 재능이나 적성을 일찌감치 발견한다"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1%의 행운아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좀 더 잘하고 관심이 가는 분야가 무엇인지 떠올려보고 그러한 분야에 집중해서 끈기를 가지고 해 보라고 조언한다. 적어도 자신이 잘하고 관심이 가는 분야의 일이라면 아무리 잘 못 골랐다 해도 그렇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최근 나라는 사람을 깊이 공감하고 내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꿈을 발견했다.
작가가 되는 것이다.
작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읽었던 수많은 희곡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의 생각과 상상이 흰 모니터에 검은 글씨로 채워진다. 돌고 돌아 결국 다른 방식이지만 난 다시 내 꿈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왜 미처 그 당시에는 작가가 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정말이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했었다. 생각조차 말이다..
시작은 서평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서평 기록을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했고 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 그게 나의 꿈이자 목표가 되었다.
브런치는 나에게 정말로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해 주었다. 브런치에서 발행해준 작가 명함은 내가 나의 꿈에 한 발작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나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꿈이란 결국 행복과 연관이 있었다. 길고 긴 인생길 평탄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시밭길을 걸을 때도 있고 가도 가도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것 같은 힘든 시기도 있다 그런 인생길에 꿈을 꾼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기적 중 하나일 것이다.
감사하다.
꿈을 되찾아서
감사하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이곳 브런치에서 마음껏 꿀 수 있어서...
이제 다시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