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출근 전에 세 가지 선택을 놓고 갈팡질팡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느냐, 어떻게든 운전해서 가느냐, 연차를 내느냐.
결론적으로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집 밖을 나가기 전입니다.
차에 올라타고 지하주차장 메인 통로로 나오는데 차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그걸 본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가고 있었는데 메인 출입구 차단기 앞에서 멈췄습니다.
일반 도로로 우회전하던 앞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까 지하주차장에서 막혀 있었던 원인인 거 같습니다.
아파트도 벗어나기 전부터 차를 가지고 가겠다는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제 차 뒤로는 차들이 줄지어 있어서 차를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도로 상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새하얀 눈 위에 새로운 길을 내며 갈 수준이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눈이라 밟으면 미끄러움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차들이 지나간 자리는 울퉁불퉁 눈들이 땅에 박혔고 그런 곳을 지날 때면 차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왕복 4차로 도로는 누군가가 개척해 놓은 1개 차로만 이용되고 있어서 차들이 도로를 꽉 막고 있었습니다.
한 번씩 미끄러짐을 강하게 느낄 때나 앞에 가는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는데도 계속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야 하나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예전 같았으면 차를 돌려 집으로 갔을 겁니다.
위험하다고 예상되는 모험을 시도하기를 몹시도 꺼려했었거든요.
물론 이 상황은 목숨과 재산상의 피해가 가는 무모한 모험이긴 합니다.
모험에는 언제나 실패가 도사리고 있으며 모든 책임이 따릅니다.
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한 번 가보자. 사고가 나면 보험 처리하면 되고 슬슬 가니깐 죽지는 않을 거야. 일단 끝까지 가보는 경험을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깐 오히려 운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쌓인 도로들의 형태를 하나씩 경험해 가면서 비슷한 형태의 도로를 다시 만나면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눈길 운전을 추천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운전을 최대한 자제하고 혹시나 하게 되면 안전장비를 갖추고 해야 하는 게 가장 최우선입니다.
약간은 무모할 수도 있지만 눈길 운전을 통해 삶에 대입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은 누구나 말하길 무섭고 위험한 길은 시도하기를 멈췄습니다.
제가 스스로 경험한 게 아닌 당연히 그렇다고 믿은 것들이 가짜일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기 직전의 이반 일리치가 떠올린 생각과 비슷합니다.
부모가 사회가 알려준 좋은 삶을 따라 살아왔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이반 일리치는 그런 삶이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뜻한 바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강하게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도 유명한 문장이 있죠.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헤르만 헤세도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음 앞에 갔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모아둔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가 매우 쉽지 않습니다.
먹고살아야 하기에 돈을 벌어야 하고, 처음부터 기반이 없으니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가 굉장히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생각 또한 고정관념이고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큰 두려움을 깨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생각만으로 안된다고 했던 것들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깨어보는 게 어떨까요?
작지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언젠가 큰 두려움도 깰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오늘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을 찾아 깨어보시기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