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정김경숙(Lois Kim) 님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VUCA 시대,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때로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한 해를 담대하고 용감하게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정김경숙 님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 보세요.
Q. 안녕하세요 로이스 님, <2023 헤이조이스 리유니온 파티> 연사로 서신 후로 1년 만에 뵈어요. 작년에 구글을 퇴사하신 후 ‘갭이어’를 보내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Your job is eliminated immediately.(지금 이 시간부로 너의 직업은 없어졌어)”
2023년 1월 말, 자고 일어났더니 이메일이 한 통 와 있었어요. 메일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누가 장난 메일 보냈나? 이건 장난치고 너무 세다’였지요. 바로 이어서 리더와 통화를 나누고 저희 팀이 다 날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당시 1만 2천 명 정도 정리해고(Layoff)가 됐는데, 저도 그중 한 명이었죠. 며칠 동안은 감정 기복이 롤러코스터를 타더라고요. 처음에는 부정을 했고, 그다음에는 분노가 일었어요. ‘내가 16년 넘게 구글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뼛속까지 구글러였는데 나를 자르다니’라는 배반감도 많이 느꼈어요. 정리해고가 업무성과와 상관없이 랜덤하게 이루어진 거라 ‘왜 내 팀이어야 할까’, ‘Why me!’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는데,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너 원래 책 내고 나서 2~3년 있다가 구글 그만두고 작은 회사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 온 것뿐이라고 생각해.” 맞는 말이었지요. ‘과연 내가 2~3년 뒤 계획대로 그만둘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쉽게 그렇다는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막상 그때가 되면 오랜 시간 잡고 있던 동아줄이 너무 단단해서 내 손으로 자를 수 없었을 거예요. 동아줄을 잘라준 것에 감사하자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돈(패키지)까지도 받아 가면서 말이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1년간 갭이어를 가지며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하고 싶은 일들을 리스트로 쭉 써봤지요.
Q. 갭이어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에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가장 먼저 리스트에 적은 것이 ‘1만 명 만나기 프로젝트’였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동안 큰 회사에 있다 보니까 점점 사람들과의 접점에서부터 멀어져 왔거든요. 유저 리서치할 때가 아니면 고객들을 만나 진짜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생각보다 별로 없었어요.
‘트레이더 조’라는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다음에 스타벅스 바리스타, 리프트 공유 택시 운전사, 검도 사범까지 하며 그간 잘 만나지 못했던 끝단의 고객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지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개념도 있잖아요. ‘1만 명 정도 만나면 내가 생각지 못한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시작했고, 벌써 1만 명을 훌쩍 넘긴 것 같아요. 실제로 저의 머리와 마음을 울린 인생 스토리를 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서 갭이어를 가지길 잘했다 싶어요.
Q. 갭이어를 가지는 동안 책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도 출간하셨어요. 이 책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영어 공부와 관련된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왔어요. 주변에 영어 고민하는 사람이 늘 많았거든요. 저의 경우 마흔부터 영어를 제대로 해 보기로 마음먹었고, 10년 넘게 쉬지 않고 해왔어요. 처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저 혼자뿐이더라고요.(웃음)
제 가장 큰 장점은, 그냥 꾸준한 것이에요. 마흔에 시작한 영어가 10년 뒤에 결실을 맺어서 미국 본사도 오게 되었죠. 전세계에서 글과 말로는 한가락 하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일하다 보니, 정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어요. 엄청난 경쟁 속 매일의 분투기가 이번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교과서적인 영어 공부법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수담이나 고생담을 나누고 싶었어요.
언어는 꾸준히 하는 게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 타고난 언어 감각 없는 저 같은 사람의 좌충우돌기를 보며 끝까지 가볼 용기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영어에 스트레스 받는 분이시라면 정말 꼭 한번 읽어 보세요.
Q. 책을 펼쳐 맨 처음 들어가는 글을 읽었는데, 미국에서의 치열한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50세에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로 가게 되었어요. 당시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자’, ‘망해서 집에 돌아오더라도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떠났어요. 첫 6개월 동안 구글 본사에서 제공한 호텔식 아파트에 머물렀는데요. 숟가락 하나, 수건 하나조차 내 것은 하나도 없었던 그 아파트에서 머무는 동안 거의 밤잠을 이룰 수 없었죠. 한밤중에 눈을 뜨면 보이는 낯선 호텔 방조차 저에게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You do not belong here!)”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수많은 회의에 들어가고 사람들도 끝없이 만나며 열심히 일했는데도, 영어를 너무도 잘하는 사람들 사이 ‘내 영어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죠. 6개월을 거의 뜬 눈으로 새울 정도로 절박하게 공부한 시간이었어요.
Q. 영어 공부를 미루거나,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제가 지금 56세인데, 만약 누군가 “30세로 돌아가면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영어 공부를 반드시 시작할 거라 답할 거예요. 다시 40세로 돌아가도 영어 공부를 시작할 거고요. 내가 속한 도메인에서 일을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어를 잘하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회들이 정말 많이 찾아와요. 지금 당장 내 손에 쥐어진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곤 하는데요. 영어를 잘하는 게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중요해지니 영어를 꼭 시작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늦은 나이는 정말 없어요. 영어는 50세에 시작해도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년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이전 사수 중 영어로 엄청 큰 동기부여를 해준 분이 있어요. 최근에도 연락을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영어는 일할 때도 정말 많은 기회를 줬는데, 은퇴 후에도 내 인생을 풍부하게 확장시켜 준다.” 해외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외국 NGO에서 자선 활동도 할 수 있는 등 영어라는 자산을 가진 덕분에 은퇴 생활이 더욱 풍성해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영어는 아무리 늦게 시작해도 손익분기점(Break-even Point)을 넘을 수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일과 삶에 진심인 헤이조이스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매년 가족들과 함께 모여서 새해 계획을 짜는데, 작년 말 2024년을 앞에 두고는 유독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갑자기 내 삶에 내가 원하지 않았던 큰 변화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는데요. 그럴 땐 잠시 숨을 돌리며 갭이어를 가져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번에 처음 갭이어를 가져봤는데 여러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며 좋은 자극과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얼마를 벌면 은퇴하고도 경제적·심리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은퇴 예행 연습도 할 수 있었고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관점을 이동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럼에도 한 번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분명 다른 면이 있어요. 그걸 기억하는 것이 중요해요. 내 커리어의 끝이라 생각되는 순간이 와도 절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곳으로 가는 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제가 layoff 된 후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다 오타를 낸 적이 있었어요. “I am one of the layoffs.”라고 써야 할 것을 “I am one of the playoffs.”라고 잘못 쓴 거예요. 스포츠 경기에서 Playoff 란 결승전 진출을 말하는데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니 구글에서의 layoff 가 저를 인생 결승전에 올라가도록 해 준 것 같더라고요. 로이스 결승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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