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찰나의 행복을 현명하게 누려보기 위한 루틴
월급날-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월급쟁이들에겐 그저 행복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행복은 찰나와도 같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몇십 번의 월급날을 보내며 나는 적어도 월급날만큼은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일종의 루틴을 만들어 지키기에 이르렀다.
step1. 감사한다.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띠링-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신한은행의 알리미 팝업이 뜬다. 자연스레 휴대폰이 손이 간다. 팝업 메시지에 배시시 웃고 있는 것은 나뿐 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할 의식은 나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 한 달을 잘 버텨주었어. 그냥 관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날도 잘 참아주었어. 이 월급은 오롯이 너의 것이며, 너의 노고를 치하 하노라... 하며 스스로에게 온갖 감사와 칭송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step 2. 월급명세서를 꼼꼼히 살핀다.
월급명세서를 살펴본다. 기본급은 얼마이고, 건강보험료는 얼마인지, 기타 수당 등은 얼마인지. 나의 경우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날의 식대가 차감되어 지급되기 때문에 식대 등에 대한 부분도 살핀다. 매월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받은 월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아는 것은 꽤 중요하다.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는 나의 월급을 작업하여 입금하기까지의 급여담당자와 관련 결재자들의 노고에 잠시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step3. 평소보다 열심히, 의욕적으로 일한다.
말해 무엇할까. 오늘만큼 애사심이 넘치는 순간도 없다. 그리고 오늘은 대체로 타 부서 팀원들의 마음도 평소보다는 살짝 너그럽기에, 풀기 어려웠던 과제들도 조금씩 해결해보고 의욕적으로 업무에 임해 본다. 보통 월급날에는 팀장님 또는 팀원으로부터 티타임을 갖자는 메시지를 받는 일이 많은데 즐겁게 티타임을 가지면서 팀워크를 돈독히 다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상종하기도 싫었던 O대리의 실없는 장난도 웃으며 넘겨줄 수 있는 날이다.
step4. 퇴근 푸드를 고른다, 그것도 아주 신중히.
월급날의 퇴근 푸드는 아주 특별해야만 한다. 보통 월급날에는 술 약속을 청하는 이들이 많지만, 약속은 내일부터 잡아도 충분하다. 오늘은 위대하고 중요한 월급날로, 집에 가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대신 기분 내기에 딱 좋은 퇴근 푸드를 고르기로 하자. 나의 경우는 살짝 느끼한 메뉴와 맥주의 조합을 선호한다. 적당히 기분 좋게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취기가 심하게 돌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위해 아껴둔 맛집에서 미리 주문해두고 퇴근하면서 테이크 아웃하여 집으로 가는 그 길. 생각만 해도 그저 행복하다.
-추천 메뉴: 연어초밥과 밀맥주(호가든, 블랑), 꿔바로우와 칭따오, 치킨(갈릭, 간장)과 라거 맥주
step5. 신용카드 선결제를 하고 월 지출 계획을 점검한다
중요한 시간이다. 일단 퇴근 푸드를 상 위에 펼치고 기분 좋은 음악을 튼다. 음악은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살짝 비장하면서도 웅장하고 빠른 곡이 좋다. 노트를 편다. 이 달의 실수령액과 저축 금액, 카드값, 고정 지출(보험료, 주거비, 교통 통신요금), 변동비(예상 식비, 경조사비 등)를 쭉 적는다. 카드값은 바로 어플을 켜서 선결제 진행한다. 가계부 어플을 보며 지난달의 지출을 겸허히 반성하고, 이번 달의 지출의 계획을 다시 조정한다.
-추천곡: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제4악장
step6. 네이버 해피빈 기부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프로그램에 참여도 해봤지만, 매월 내가 희망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이 방법으로 기부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기부(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DonateHomeMain)를 통해서 내가 기부하고자 하는 항목에 맞는 단체와 주제에 따라 원하는 금액만큼 기부할 수 있다. 큰 금액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1만 원, 때로는 5만 원씩 월 별 자금 상황에 따라 기부 금액을 달리 해가며 사연을 읽고 기부한다. 적은 액수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 기부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 혜택도 있다.
step7. 지수 추종형 ETF를 매수한다.
언젠가 이 주제도 브런치에서 다뤄볼 예정인데, 나는 매월 적금을 하듯 지수 추종형 ETF를 매수하고 있다. 저점을 매월 분석하여 해당 시점에 매수한다면 좋겠지만 저점을 추측하는 것은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시장의 우상향을 믿기에 지수 추종형 ETF를 장기 투자하고, 매월 저점이 언제인지를 고민하며 타이밍을 놓치기보다는 월급날마다 매수하면서 분할 매수의 효과를 얻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보통 월급날 매수하는 종목은 VOO(S&P500 추종 ETF) 또는 QQQ(나스닥 100 추종 ETF)이며, 상황에 따라 눈여겨본 ETF를 추가로 매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언젠가 여행주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 하에 AWAY ETF(여행 관련 기술주에 투자하는 ETF)를 조금씩 매수하고 있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잠깐의 행복은 잊히고 다시 현실의 쳇바퀴에 갑갑해하겠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한 달에 하루쯤은 고생한 나에게 감사하고, 조금 더 열심히 일하고, 주변을 위해 베풀고, 행복해해도 되는 것 아닐까? 다음 날이면 각종 자동 이체 등으로 인해서 다시 잔고가 0에 수렴하게 될 지라도 말이다.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한 나, 당신, 그리고 모든 직장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