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줘버린 이야기여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정보 없이, 제목의 뜻조차 모른 채 영화표를 예매했다. 좋았다,고 하는 친구의 한 마디만 믿고. 그냥 그렇게 되는 날도 있다.
첫 장면에서 오래도록 만화를 그리는 학생이 나왔을 때, '아, 그림 그리는 이야기라고 했던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어서 유치하고 귀엽기 그지없는, 굉장히 일본틱한 장면이 펼쳐졌을 때, '음,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영화인가...?' 하고 여전히 감을 잡지 못했다.
그것은 주인공이 매주 학보에 싣는 네 컷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짧게 보여준 것이었고, 만화도 만화를 그린 주인공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 열심히, 애써서 그려놓고 '시간 없어서 대충' 했다며 뻐기는 열한 살짜리 아이. 뭐, 그런 이야기인가 했는데, 다음주 함께 실린 등교거부 학생의 네 컷 만화는 그때까지 주인공의 만화를 '애가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엄청난 작화였다. 웅성대는 아이들 사이로 동공이 커지고 숨이 멎는 주인공.
아, 이거 뭐지? 라이벌 이야기인가? 이것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지, 하며 나는 조금씩 따라갔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노력, 열정, 성장. 그리고 경쟁자 혹은 타인의 존재, 좌절과 포기, 체념.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여러 기억과 감정들이 톡톡 건드려졌다. 이야기는 점점 정교하고 풍성하게 얽혔다. 특별한 존재, 우정, 쌍방 구원. 그리고 다시 성장, 꿈과 열망과 성취, 이유를 묻는 마음. 여기까지만 해도 가득하다고 느꼈다.
둘은 다른 마음을 품고, 떨어진다. 슬슬 음미하며 감상하는 입장에서,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조차 어쩌면, 마흔 넘게 나이를 먹었으니 '알 만하다' 싶은, '그럴 수밖에 없지' 여기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마음을 줘버린 이야기에서 이 둘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더 이상 쿨하게 지켜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펼쳐놓느냐에 따라 나는 이제,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 푸느냐고, 세계관이나 철학이 너무 아쉽다고, 안타까워하거나 화가 날지도 모를 그런 상태였다. (그래봤자, 이 영화 실망스러웠다, 중반까진 좋았는데! 혼자서 꿍얼댈 뿐이었겠지만.)
하지만 나는 이어지는 갑작스런 전개에 당황하는 것 이상으로 끝맺음이 마음에 들었다. 만화적 상상력을 한껏 활용한 연결이 황당하기는커녕 말도 안 되게 깊은 위로가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눈을 깜빡거리는 동안, 마치 <라라랜드>의 그 유명한 '상상의 회상 장면'을 보듯, 단단해진 손으로 받아들이자고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슬픔과 안타까움은 여전히 출렁대지만 더 이상 뭐든 집어삼키는 파도는 아니게 되었다.
다시 일어서 걷고, 다시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의 뒷모습은, 내가 딱 원하는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리고 쥘 수 있을 만큼의 희망도.
+) 일주일 후, 13세 딸과 함께 한 번 더 봤다.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러닝타임이 한 시간이라 그럴 수 있었다 해도, 내가 어떤 영화를 두 번이나, 그것도 일주일 상간으로, 심지어 영화관에서 보는 일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