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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어디까지 열려 있나

그런데 누가 한 방 먹었지?

by 모도 헤도헨

어떤 사람 앞에서 나는 너무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 앞에선 그야말로 꽉 막힌 사람이다. 어떤 무리에서 나는 너무 급진적인 사람 취급을 받으며 갑갑한데, 어떤 무리에서는 어떤 가치를 놓지 못하고 시무룩해진다. 내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지만, 언제나 정직하게 옳다고 여기는 바를 취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상한 지경에 처한다. 아마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겠지.


그러니 합리적인 추론을 하면, 우리 모두 다 완전히 옳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며 한없이 유연해지려다가도, 어느 순간 '이것까진 아니지' 하는 선을 긋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없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또 그 적정한 선에 대한 합의가, 이번에도 역시, 사람마다 같지가 않다.


차이에 부딪힐 때, 논리의 허점이나 모순을 발견하고 전환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더욱 공고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비슷한 사람끼리도 갈라져 눈 흘기며 손가락질하고, 같은 사람끼리는 똘똘 뭉친다. 그들 역시 찢어져 할퀴게 될 때까지.


이런 과정은 그 안의 당사자로서든 지켜보는 사람에게든 굉장히 피곤하고 서글픈 일이라, 선의를 가진 양식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생각과 마음을 열어둔다.


그런데 어디까지? 그러니까 적당한 선까지. 그 선, 그게 언제나 문제다.





'콘클라베'가 추기경단이 격리되어 교황을 뽑는 비밀선거라는 것과 장르가 스릴러라는 것만 알고 영화를 봤다. 부디 다른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스포일러는 쓰지 않을 테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다. (일종의 예습으로 <두 교황>을 다시 보고 갔는데, 그 정도는 추천?)


정신없이 몰아치지도 늘어지지도 않는다. 너무 많은 정보를 쫓아가느라 바쁘지 않고 너무 헐거워 지루해지지 않는다. 음습하고 긴장 서린 음악이 대놓고 몰입감을 높여줘서 오히려 뻗대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그리고 그사이 공백까지 잘 엮인, 잘 만든 영화였다.


콘클라베에 대해서 일반 사람으로서 거의 아는 바가 없고(일생 동안 몇 차례 일어나지도 않는다), 실제 추기경을 개인적으로 알기는커녕 만날 일조차 거의 없지만, 엄청난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아무리 성직자라 해도) 모였으니 썩 아름답지 않은 권력 다툼이 있다는 설정은 한편으로 뻔하다. 또 되어가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대강 이러저러하게 되겠다고 눈치를 채는 것도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그러니까 성직자들이, 그것도 성직자 중의 성직자들이!) 각자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갈라지고 뭉치는 모습은 흥미롭다(우리랑 똑같구만-). 한편엔 보수가 있고, 한편엔 진보가 있다. 속이는 자가 있고 드러내는 자가 있다. 흥분하여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사람이 있다. 이 양 끝들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듯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기도 하고, 저쪽 편과 같은 태도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줄곧 따라가게 만든 사람은, 권력을 탐하지 않고 거짓이 없으며 깨어 있고 용기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넌지시, 그를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이고 지지하게 되는 우리 자신을, 그만큼 권력을 탐하기보다 정의를 추구하고, 진정성 있으며, 누구를 이끌 만큼은 아니어도 깨어 있고, 나서진 못해도 용기 있으며,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진 않는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래서 진보라고 뭉친 사람들이 어디까지 열려 있는지에 따라 갈릴 때에도, 같이 뒤뚱거릴지언정, 혹은 기꺼이 다 열어젖힌 채로, 과거의 가치를 붙들고 확신의 화신처럼 구는 사람에게서만큼은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조금은 불안해하고 괜히 시시해지려는 순간, 당신은 여기까지도 열려 있을 수 있냐고 도발하듯 묻는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끝내버린다. 제대로 한 방 먹인 것 같다.


그런데 누가 한 방 먹었지?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을 따라가며 스스로를 '선의를 가진 양식 있는 사람, 편견 없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 사람은 아니다. 유쾌하다 못해 고소하기까지 할 것이다. 자신만큼 열려 있지 못한 사람을 비웃으면서.


그렇게 영화관을 나왔는데,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이 일에서만큼은 그랬는데, 혹은 영화로 소비하자니 확실히 그렇긴 했는데, 글쎄, 난 어디까지 활짝 열려 있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분명 나도 어느 영역, 어느 지점에선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을 것이다.


내 나름대로 어떤 선을 기준으로 삼고 '여기까진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아무래도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고수하는 사람이 어쩌면, 순전하게 극단에 선 입장보다 더 위험하진 않을까? 독단과 교만은 같지만, 적당히 열린 사람은 거기에 '나는 사려 깊은 사람'이란 자아상까지 더해졌으니.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내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불안하고, 알 것 같을 때에도 불안해야 마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이 불확실성 속에서 그나마 제일 나은 것 같다. 이 생각만큼은 또 진짜 맞는 것 같은데 어쩌지.





+) 번역오류가 좀 있나 보다. 나도 두어 군데서 붕 떴고, 그중 하나는 감상에 치명적이었다. 이 글을 읽고서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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