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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깜냥과 욕망

그런 작가가 뭐에 쓸모가 있을까.

by 모도 헤도헨

보름 전쯤 변영주의 <창작수업>을 재미있게 읽었다. 새삼 변영주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언니로 삼기로 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마냥 즐겁게 들었는데, 그중 아버지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변영주가 대학생이 되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졌단다. (서로의 책을 다 불태우고, 아버지가 구독하던 <조선일보>를 변영주가 먼저 읽으면 아버지는 무식한 전염병 옮는다고 그 신문을 버리고...) 그러던 어느 날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읽고 엉엉 울었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이후로 화해도 하고.


당장 도서관에 가서 <그 남자네 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변영주가 본 '아버지의 청춘'이 궁금했고, 그토록 미워했던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든 이야기가 궁금했다. 소설은 금방 읽을 만큼 술술 읽히고 꽤 재미있었다. 미군정 시기 보통 사람들의 삶이 처음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변영주를 울려버렸던 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른 채로, 박완서에게 관심이 넘어갔다.


2019년 처음으로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유명했던 소설가의 소설을 왜 그제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떻게 연도까지 기억하는지는 안다. 이런 식이라면 나도 소설을 써볼 수 있겠는데? 하고 그해 처음으로 소설을 썼으니까. 박완서의 소설이 하도 시시해서 소설이 우습고 소설 쓰기가 쉬워 보였다는 게 아니다. 그 직전에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으면서는 '아~ 알겠어. 별거 아니잖아?' 하면서도 막상 써보려 하면 어떻게 풀어갈지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는데, 박완서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이렇게라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어' 그런 가르침이 되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마흔을 바라보던 나이에, 마흔에 등단했던 박완서의 존재는 특별했다. 나는 너무 티 나지 않도록 다시 박완서를 모르는 척했고, 마흔이 지나고부터는 그 특별한 박완서가 괜히 고까워져서 아예 잊은 척했다.


6년 만에 박완서를 만난 나는, 이야기를 음미하는 한편으로 내내 '아... 아...' 하면서 '나도 알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특별한 박완서'를 쫓느라 바빴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5년 전에 사두고 펼치지도 않았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꺼내 읽었다. 660여 편의 산문 중 대표작 35편을 꼽은 거라니까 오죽할까만은, 한 편 한 편이 좋았다. 고정희 시인이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고 했다는데, 정말 딱 그랬다. 무엇보다, 평범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자꾸 생각이 많아지게 했다.


다시 박완서의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 나는 거기 몇 칸을 너끈히 차지하고 있는 박완서의 책들을 보면서 흠칫 놀랐고 가만히 숙연해졌다. 그러니까 어쩌다 운이 좋았다거나, 단지 기회가 많이 주어졌을 뿐이라거나, 시대를 잘 타고나서 경쟁자가 적었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박완서는 정말, 소설이든 에세이든 쓰고 쓰고 또 쓸 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리했고, 또 읽힐 만했던 것이다. 나는 고작 그녀의 소설을 두어 편쯤 읽고 자전적 소설인 게 뻔해서, 이런 이야기는 몇 개 못 쓰지, 진짜 이야기꾼은 못 되지, 쉽게 판단하고 그녀에게서 더 배우려 하지 않았던 걸 기억했다.


소설집, 산문집, 장편소설 등 박완서의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빌려오면서(제목은 또 왜 이렇게 익숙한 게 많은지. 다 유명한 책이잖아), 묘했다. 나는 박완서를 아는 줄 알았지만 모른 것처럼, 알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작가 혹은 소설가로서 그가 궁금한 건지, 자연인으로서 그가 궁금한 건지, 아니면 단지 그의 작품이 궁금한 건지도 헷갈렸다.


그중에 한창 젊은 외아들을 잃고 일기처럼 썼다는 <한 말씀만 하소서>는 꼭 읽고 싶었다. 그 일이 있고 한참 지나 쓴 에세이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실려 있었는데, 여기에 박완서라는 작가든 한 인간이든 혹은 신앙인이든 정수가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젯밤, 자기 전 잠깐 읽으려고 펼쳤다가, 일기 말미마다 절단신공을 부려놓은 것도 아닌데 멈추지 못하고 다 읽었다.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순간에도 (미쳐버리지 못하고 굶어 죽지도 못해서,작가는 스스로를 독종이라 했지만,) 그런 글을 남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생생했다. 절망감, 처참함, 수치심, 원통함... 그리고 그것이 기적처럼 차차 나아지는 과정.


이 일을 겪기 훨씬 전에 박완서는 이미 등단했고 작가로 유명했지만, 그녀가 겪은 이 일이 그녀를 더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글도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되었다. (역사와 겹친, 유년시절의 불행과 고난을 그 역시 절절히 경험했지만) 중산층에 좋은 남편, 하나같이 잘 자란 자식들을 가진 사람이 삶의 어느 부분까지 길어낼 수 있을까. 박완서가 글에 쓴 것처럼, 공부도 잘하고 성품도 바르게 키워낸 자식들을 두고 자랑스럽다 못해 우쭐해지고 은근히 남을 깔보았던 마음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작가가 뭐에 쓸모가 있을까.


천주교 신자로서 하느님께 '제발 한 말씀만이라도 해달라'고 간절히 청했으나 답은 없고, 갈수록 몸도 마음도 영혼도 피폐해져가면서 신께 날것의 원망을 쏟아낸다. 날마다 신을 부정하며 죽이면서도 자신의 살의를 위해 당신은 있어야 한다고 이죽거린다. 그랬던 그녀에게 균열을 일으키는 말, 무릎을 꺾게 하는 각성, 그리고 뒤늦은 이해가 결국 찾아온다. 글에 적힌 몇 달의 과정 말고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이 이야기는 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의 주인인 박완서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당사자와는 또 다르게 읽혀서, 예수님이나 욥의 이야기처럼, 신의 사랑과 섭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야기이자 길을 잃었을 때 혹은 신의 손길을 놓쳤을 때 곱씹어야 할 이정표로 보인다. 그러니까 박완서에게 작가로서의 재능과 기회, 유명세, 그리고 흠 없는 아들을 주신 것이 이 일을 위함이고, 뭇사람들을 위해 이 모든 일이 예정된 것이고 박완서라는 사람을 도구로 쓴 것이라고 (감히 내가) 결정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박완서가 작가가 될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토해내 작가가 되었고,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고 노력해서 점점 더 유명해졌고, 한편으로 정성껏 애써서 자신의 아이들을 잘 키워냈고, 우리 모두 그렇듯이 이유를 모르고 불행한 일을 당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쓰는 거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을 때, 내가 박완서에게서 따라가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어떤 스타일이나 결이었지 수준이나 깊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서는,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나서 그랬던 것처럼 맥이 풀렸다. 이 정도의 일을 하지 않고서는 글을 쓰면 안 되겠구나, 이 정도 인생의 고난을 겪지 않고서는 작가가 될 수 없겠구나.


물론 그때에도 스스로를 위안하며, 글을 쓸 만큼 특별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일이 다 특별하다고 한 김완의 말을 붙들었다. 내 일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진정한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쉬지 않고 불려가면서, 그럴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온갖 불확실하고 불운하고 거친 상황, 아니 그 가능성 앞에서조차 바들바들 떠는 나를 보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어느 만큼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물어야 했다. 그래봤자 안전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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