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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전시, <김환기 뉴욕시대>

내게 맞는 것을 알아본다는 감각

by 모도 헤도헨

언젠가 읽은 에세이에, 카페에 가서 'OO 주세요'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는 내용이 있었다. 마흔까지 일 년에 커피를 한 잔 마실까 말까 하던 나는 카페에 가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 말은 확 이해가 됐다.


익숙한 대로, 습관처럼, 대세에 따라, 별다른 호오 없이 무언가를 정하는 (그리고 그 후과에 대해서도 무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한 잔의 음료라도 좀 더 내게 맞는 걸 고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실제 시도이든 사고실험이든) 해봐야 한다. 당연히 시간도 비용도 에너지도 더 든다. 전자 유형의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확신의 후자다. 심지어 나는 시도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뿐 아니라, 시도 후 반성과 후회에 드는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조차 아깝지가 않다.


나 역시 그 작가가 말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예민한 기호를 날카롭고 뾰족하게 갈고닦아서 어디서든 무엇에든 내 취향을 단호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카페에 가면, 직원이나 동행자의 초조와 짜증 사이 어드메의 기운을 느끼며 메뉴판을 응시한 채 머릿속이 바쁜 처지이지만.


그런 꿈이 있는 터라, 어쩌다 얻어걸리든, 과정이 지난했든 간에 내게 맞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일기 제목으로 쓸 만한 정도가 된다. 김환기의 전시회를 보던 날이 그러했다.





워낙 문외한인 영역이 많아, '미술에 문외한입니다만' 하는 것도 열없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그렇다. 의무교육에서 배운 정도만 알고, 전시회에 누가 가자고 했을 때 거부한 적 없지만 부러 찾아간 일도 없다.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당연히 감식안도 없어서, 대개 전시회에 가면 속으로 머리만 긁적이다 온다. 사진같이 그려진 그림이나 보기에 예쁜 그림을 보면 나 역시 '오~' 하지만,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을 보면서는 도통 어느 부분에서 감탄하거나 감동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샌들이나 가죽지갑을 난생처음 사러 다닐 때가 떠오르곤 했다. 내게 맞는 걸 찾는 건 고사하고, 뭐가 이쁜지, 어떤 게 잘 만들어진 건지, 이 가격이 과연 합당한지 도무지 모르겠구만!


그럴 때, 그러니까 내 의지로 찾아간 건 아니지만 즐겨보기 위해서 내가 낸 꾀는 이런 것이다. 내 집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이 있나? 걸어두고 보고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림이 있나? 그때마다 좋을 것 같은 그림이 있나?


겨우 하나를 꼽곤 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여러 개가 눈에 걸렸다. 그리고 그중에 딱 하나를 끝내 고르지 못했다.


내가 이런 그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채고 몸이 간질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추상화인지, 단순한 그림인지, 이런 색감인지, 아니면 단지 김환기의 그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전시회에 다녀와서 나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이를테면 어떤 상품을 사야 한다는 것만 확실한 상태에서 온라인 쇼핑몰에 검색어 쳐보고 주르륵 올라오는 것들에 멍해지는 기분이었는데, 들여다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걸러지지 않고 남아서 마음이 기우는 무언가를 찾았다.


내게 맞는 것을 알아본다는 감각, 나를 알아간다는 기쁨,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 김환기의 그림과 함께 기억될 것들이었다.



전시회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인터넷에서는 내가 맘에 들었던 사진을 찾을 수 없다. 언젠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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