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용하고 깊은 친구의 말문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사람이 있을 땐 그가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아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말을 한다 해도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러다 어쩌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 사람에게서 들으리라 기대한 적 없던, 이 사람 안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 없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가만 귀 기울여 들을수록 더 깊이 빠지면서, 앞으로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아무리 내용이 적고, 아무리 소리가 작아도 멈춰서 들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루리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산 걸까. 작품에 설핏 깔린 어떤 배경들 말고, 씨실처럼 엮인 경험들 말고, 마음속에 머릿속에 어떤 상상을 펼치고 어떤 세계를 지으며 살아온 걸까. 그 속에서 어떤 꿈을 꾸었길래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걸까.
책방에서 <나나 올리브에게>란 그녀의 신작을 발견하고 낮게 탄성을 뱉었다. 책장에 며칠간 묵혀두면서 나만 아는 보물단지를 꿍친 것처럼 든든하고 달달했다. 앞뒤 재지 못하고 달리던 몇 개월을 진정시키면서, 마침 함께 마무리해야 할 2025년을 남의 장례인 양 멀거니 바라보던 차에, 털어지지 않는 것들을 떨어내고 채우고 싶지 않은 것들은 거들떠보기도 싫어서, 나의 조용하고 깊은 친구의 말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수의 새 앨범을 처음 플레이할 때 이런 마음일까? 내겐 이 이야기가 좋을 거라는 확신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뭐, 조금 덜 좋을 수도 있지. 아무렴 어때. 나는 이미 떨 준비를, 울 준비를 하면서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엔, 이 작품을, 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이성적으로 감상할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걸 깨닫고 이제 루리의 작품에 대해서는 리뷰를 제대로 쓰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느냐 하면 그럴 리는 없었다. 나는 그냥, 엄마의 밥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너무 맛있는데?'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었으니까. 옆집 아이나 시댁 식구나 안성재는 동의하지 못할지언정, 그러거나 말거나.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꿰어가면서 나는 이것이 결국, 더하거나 덜한 조각 없이 완전하게 맞추어질 거란 믿음이 있어서, 갑갑하거나 머뭇거리거나 괜한 겉치레로 보지 않고 설렜다. 마지막 몇 장에서 기어코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오밤중인 데다 내가 울 준비를 했던 탓이라고 스스로 툭툭 건드려 보았으나, 콧물까지 줄줄 떨구는 바람에 풀기나 했다.
아침에 <메피스토>를 다시 꺼내 읽었다. 어젯밤만큼이나 훌쩍훌쩍 울며 막힌 코를 켕 풀면서, 분명히 리뷰까지 썼는데 이토록 새로울 수가 있는지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이건 이야기의 밀도와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기억력의 문제여서 잠깐 진지하게 심각했다. 가만, 어제 <나나 올리브에게>를 읽을 때에도 몇 번이나 앞으로 돌아가 까맣게 된 부분을 되새겨야 했는데...?
어쨌든 덕분에 나는, 어쩌면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보다 더 진하게 읽은 것 같다. 망설임도 긴장도 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점점 더 맹렬하게 흐릿해져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혹여 자연스러운 것 이상의 내게 덮친 파도 같은 것일지라도, 매번 새롭게 보고 듣고 만나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살짝 했다.
심지어 나는, 사실 내 삶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인간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쉽진 않겠지만, 좋은 것들만 있진 않겠지만, 더하거나 덜한 조각 없이 완전하게 맞추어질 이야기란 것에 대해 믿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을 거다.
"엉망인 사람도 살 수 있나? 망가진 인생도 살아도 되나? 수도 없이 생각해 왔어.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게 실패해 버린 내 인생을. 그런데 당신의 편지를 읽고 보니, 알겠어. 어떻게든 살아 내면 무언가가 남아. 아무것도 남길 게 없는 내 인생에조차 이 편지가 남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