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욕망'에 관하여

내 쪽에서 끝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by 모도 헤도헨

칼 메닝거는 <Man Against Himsef>(1938)에서 타나토스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고 한다. 죽이고 싶은 욕망,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 죽고 싶은 욕망.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서 죽음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고.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살을 시도한 적은 없으니 굳이 학술적 용어를 쓰자면 ‘자살사고’가 있었던 것인데, 나는 이것이 자랑스럽거나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어서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놀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만 놀고 싶을 수 있지 않은가? 학원에 다니다가 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든 시작했으면 끝이 있으니, 끝남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 나아가 내 쪽에서 끝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대학에 다닐 때 어떤 재단에 지원을 했었다. 면접을 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어릴 때부터 종종 자살을 하고 싶었는데...”라고 이야기했다가 떨어졌다. (추측이지만 맞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중요한 자리에서 더더욱 이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 어떤 책을 읽다가,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자살을 종종 떠올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그게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욕망이 세 가지 방향이 있다고? 새로웠다.


첫째, 죽이고 싶은 욕망. 이건 오히려 모두가 한 번쯤은 가졌을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 죽고 싶은 욕망과 관련이 있을까? 공격성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내 쪽으로 돌린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분노와 더 연결되어 있고, 죽이고 싶은 욕망 자체로 (그것을 실현 못했다 할지라도) 끝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다.


둘째,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 글쎄. 나는 이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칼 메닝거에 의하면,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은 ‘죄책감 때문에 처벌받고 싶은 심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런 욕망이 뒤엉켜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 그만 사는 게 낫겠어. 내가 없어지는 게 낫겠어’라는 생각은,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판단이 동반되곤 하니까. 하지만 ‘죽임을 당한다’는 것, 그게 신이나 사람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든 우연한 사고를 가장해서 이루어지든, 아무래도 원한 적이 없다. 그런 방식은 서글프고 끔찍하다.


그리고 셋째 죽고 싶은 욕망. 삶, 오만 가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래서 0이 되고 싶은 욕망. 아주 오랫동안, ‘앞으로 경험할 모든 기쁨이나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감당해야 할 현실을 생각하면 언제든 죽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어쩔 수 없이, 내몰려서 가진 게 아니라, 매우 합리적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내려놓던 순간이 똑똑히 기억난다. 첫 아이가 나온 순간, 아이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이제 자살은 못하겠구나.’


그래서 이후로 죽고 싶은 욕망을 잊은 채 살았느냐 하면 그렇진 않다. 나는 죽음에 대한 욕망이 본능이든, 혹은 정신적/정서적/심리적 문제이든, 아니면 유전적/환경적/사회적 원인 때문이든, 여전히 나에게 있고, 앞으로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들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며, 나를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질리지 않는 일이다. 이 과정을 즐기기로 한 것 역시, 죽음에 대한 욕망을 안고 계속 살아가는, 나의 비법, 기술이다.


이 비법 목록에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 소설을 쓰는 것, 달리기를 하는 것,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 등등이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시도해보는 것, 모르는 것을 경험한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것, 스스로 궁금하게 만들고 마음을 준 일에 대해 실컷 빠지는 것. 살아가는 데에 ‘모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죽고 싶은 마음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류인 것 같다. 너무나 죽고 싶다 보니 방법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종종 자살이 되는 것일 뿐. 그러니까, 나는 내 존재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면 하고 바란 것이지, 내 손으로 나를 죽이는 것이나 타인 혹은 신의 손을 빌어 죽임을 당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죽이고 싶은 욕망 또한 그만큼 그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하고 바란 것이지 내 손으로 살해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는 이 둘이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받은 오해, 내 쪽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타인의 흔들리는 눈동자 사이에서 내가 늘 고개를 갸웃했던 것은 이 간극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사과와 복숭아, 그리고 고기를 대하는 저 세상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