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일생

자작시

by 몽중상심

수두룩 빽빽하게 쌓여 있는 종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실수로 태어나 버려진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몸이 젖거나 찢어져 병들어서 버려진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까?


깔아뭉개진 친구의 목이 뻑뻑하진 않을까

깔아뭉개는 친구의 마음이 먹먹하진 않을까

그 사이에 낀 친구의 표정이 답답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숨이 막혀 죽을 만큼 쌓여서야

그제야

새로운 일생을 찾으러 떠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때까지 이 좁디좁은 방 안에서

자욱한 먼지 마시며 갇혀 있는 신세가

낡고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널브러진 너의 모습이

왜 이렇게 내 모습 같은지 말이야


언젠가 새로운 종이가 되는

그날을 기다리기엔

언젠가 또다시 버려질

그날이 떠오르기에

너희들을, 그저 기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위태롭게 쓰러질 것 같은 너희들을

다시 세워주는 일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