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22. 옛 추억 회상 중에
동생은 인천의 사립 S고에 진학하였다. 고3의 어느 날,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어머니는 심기가 몹시 불편하셨단다. 지도 차원이라고 하지만 단체로 책상 위에 무릎을 꿇게 하고서는 허벅지를 때렸다니... 며칠을 끙끙 앓다가 집전화기를 들었다가 놓고는 결국 큰 결심을 하셨단다. 공중전화로 달려가 해당 학교 교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인사 말씀 생략) 어쨌든 0반 학생들 허벅지가 시퍼렇다고요. 지금 엄마들이 모여서 교육청에 단체로 찾아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교감선생님이 당황하실까 봐 전화드렸어요. 어떻게 할까요? 교육청으로 갈까요?"
분명 전화로 볼 수 없었겠지만, 교감이 벌떡 일어나 굽신거리는 게 보였단다. 반드시 교육해서 이런 일이 없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교감이 묻더란다. 그런데 누구 학부 모시냐고... 어머니는 고민하다가
"체벌로 고통받는 모든 학생의 학부모입니다!"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단다.
그렇게 15년이 지나, 밝힌 어머니의 무용담. 동생은 깜짝 놀랐다.
"그거 엄마였어?"
동생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랬다. 그다음 날, 반 남, 여학생 몇 명이 보건실로 불려 갔고, 허벅지에 멍이 난 곳을 교감과 보건 선생님이 확인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올라와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종례시간에 담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하아... 누구냐? 신고한 놈이?!"
아이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눈감고 이야기하면 다 용서해 주마, 사실은 사과하려고 그러니 제발 누가 했는지 손들어라. 그런데 학생들 중 누구도 끝까지 나서지 않았다. 왜? 정말 누가 그런지 몰랐으니까.
다음날, 아침 담임은 교감과 함께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눈을 치켜뜨며 본 것 같아 섬뜩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체벌은 없었지만 여전히 거친 말과 행동을 보여주셨고, 어느덧 졸업식날이 되었다. 아무리 슬프고 아픈 기억도 졸업식날에는 다 추억이 되지 않던가. 졸업식날 아침, 학생들만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담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심했다는 건 안다. 고3인 너희들이 정신 좀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표현이 과했던 거 같다. 이해해주기 바란다..........."
조금의 여운이 흐르고 다시 입을 뗐다.
"그런데 진짜 그때 그거 누가 신고한 거냐? 진짜 가는 마당에 좀 알자."
그렇게 다시 15년이 흘러 우리 집은 웃음과 어이없음의 감정에 휩싸였다. 동생은 만일 어머니가 한 걸 알았다면 집요함에 못 이겨 자백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어머니는 그 이후로 그 학교 교복만 보면 허벅지를 유심히 보셨다고 한다.
나는 이제는 학교에 전화 한 통 하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와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맞아도 아무 말 안 했던 동생과 끝까지 잘못을 모르는 교사의 웃긴 조합이 이제는 전래동화처럼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