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

by VIVA

'누구 닮았는데, 그 누구더라... '

'아.. 000요? 아니면 XXX? 그죠?'


상대는 내 말에 손바닥을 치며 답을 찾았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본다.

오밀조밀 눈 작은 유명인 몇 명 이름을 나열하면 된다.

내가 봐도 닮은 사람이 있고

내가 보기에는 전혀 다른데 닮았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닮았다는 유명인이 긍정적인 이미지면 괜찮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면 괜스레 내 이미지까지 나빠지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여기에 관상은 과학이라며

비교 대상의 부정적 이미지를 나에게 떠보는 사람도 있다.

돌려 까기도 가지가지로 진화 하나 보다.


얼굴이야 나의 의지와 노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순수한 유전자의 대물림이라 어깨 으쓱하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그 대상이 내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글이나 작품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창작들이 참으로 듣기 껄끄러운 이 말,

이 말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어... 저... 저... 저거... 내 아이디어인데...'


몇 날 몇 밤을 끙끙 앓았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고 하소연을 하지도 않았고

공론화하여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갈등 회피 성향의 최극강인 나는 우선

내 속을 풀어내는 게 중요했다.

감정에 사로 잡혀 있을 때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반백살이 코 앞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제3의 객관화된 시각을 가진 사람,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

동생에게 연락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 多商量!

귀 딱지 앉도록 듣는 말이다.

무엇이든 기준과 기본이 있어야

거기에서부터 변형이 시작된다.

태권도 품새를 배워야 자유 겨루기가 가능하고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움직임을 익혀야 스파링이 가능하다.

자유 겨루기로 바로 등판하면 헛발질하다가 경기 종료되고

스파링으로 직진하면 링에 던져진 하얀 수건처럼 대자로 너부러진 채 게임 오버된다.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는 당대 구전되고 회자되는

모든 이야기를 수집해서 극을 만들었다.

대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그는 대본을 종이에 옮겨 적었고 그제야

'대본'이라는 것이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대본의 스토리는 대부분 있는 이야기의 변형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하거나

서민들에게 유행했던 사랑이야기,

요즘 우리말로 하면 '썰'에

그의 스토리 텔링이 가미된 것이다.


수많은 작법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원형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원형의 이야기가 있다는 건,

거기에서 변형된 이야기를 만들라는 의미다.

출발점이 없으면 시작할 수 없다.

출발점은 기존의 작품들인 거다.

기발하고 특출 난 듯 한 이야기들 도 뜯어보면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출발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다독이 정말 중요한 거다.

다독을 하면 자신의 머리와 가슴속에

재료가 풍부하게 되니까 말이다.

냉장고가 식재료로 가득 차 있으면

이것저것 해 먹을 것이 많지만

냉장고가 텅 비어 있으면

온갖 생각과 고민 끝에 궁리해 낼 수밖에 없다.

창작가가 천재급이라 다상량만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망생이라면

시간과 노력, 다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니는 어디에서 그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는 사람이 그 직업이고, 그의 엄마가 그 직업이어서

그 두 개를 섞어서 만들어 냈지'

'그럼 에피소드들은?'

'그냥 생각난 대로 써 나갔어.'

'.....'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우선 나의 억울함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있다는 게

전화 너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말을 아낀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혼자 떠들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일방적으로 내 말을 뱉어냈다.


'주인공이 이렇게 완벽하게 똑같이 세팅될 수 있을까?'

'언니,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 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해. 이야기 전개가 비슷하긴 해도'

'....'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닫았다.

나는 상황에 따른 합리적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걸 증명할 수 있는 힘도 없고 위치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 주인공과 에피소드는 진정 하늘 아래 완전한 새것일까?

아니다. 가만 뜯어보면 어디선가 여기저기 따온 프랑켄슈타인 같은 아이다.

내가 보고 듣고 읽은게 얼마나 많은데

하늘 아래 새것이라고 수는 없다.

그 보고 듣고 읽은걸 내가 소화해 내서 되뱉어낸

닮은 듯 다른 아이인거다.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다.

거기서 거기인 평범함에 독특함을 부여해 주는 게

창작자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자유이자 책임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모방할 수는 있다.

벤치마킹, 오마주 등, 패러디 등이다.

하지만 복사는 안된다.

기름종이를 원형에 두고 그대로 베끼고

그걸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하면 그게 표절이고 도용이다.

복사한 것에 변형을 가해서 비슷하지만

다른 무엇인가를 넣고 빼고 비틀어 새롭게 만들어 내면

그것이 '하늘 아래 새것 없는 창작' 이 된다.

창작은 어찌 보면 재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다.


내가 만들어 낸 직업은 쉽게 볼 수 있는

직업 여러 개를 섞어서 만들어 낸 거다.

주인공의 가족과 그녀의 에피소드 역시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그럼에도 정황상 딱 맞아떨어지는

나의 합리적 의심이 쉽게 가시 질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동생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언니 아이디어가 채택된 거네.

설정이며 에피소드며, 대단한데

능력자다, 능력자, 언니 희망이 보여'


생각 한 끗 차이다. 도둑맞은 게 아니라 채택되었다는 생각.

동생의 말에 마음의 모든 응어리가 풀렸다.


동생과 통화 끝에 현기증과 허기가 몰려왔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토마토가 있다.

토마토로 뭘 만들 수 있을까?

간단하게 토마토소스를 후딱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뜨거운 물을 올리고 파스타 삶을 준비를 했다.

냉장고를 다시 열었다.

한 구석에 마른 페페로치노와 할라피뇨 초절임이

눈에 들어왔다.

토마토소스에 페페로 치노를 넣으면

이탈리안 아라비아타가 되고

할라피뇨를 넣고 고수와 생양파를 다져 섞으면

멕시칸 요리가 된다.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페페로치노와 할라피뇨 모두 꺼냈다.

조리대 위에 올려진 유럽의 매운맛과

남미의 매운맛 고추들을 물끄러미 봤다.

얼빠진 내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기로 했다.


'선택할 것도 없다. 두 개 다 넣어 보자.

나만의 저세상 매운맛을 만들어 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