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며 나를 돌아본다

하루 일상이 어떻게 돼요?

by VIVA

얼마 전 모임이 있었다.

코로나로 연기되고 취소되었던 모임이었다.

오래전에 모였어야만 했던

당위성이 충분한 만남이었다.

굳이 나 자신을 집 밖으로 내몰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럽게 난 그 모임에 참석하겠노라 했다.

역할이나 가면 없이 편안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모임 약속을 하고 난 신이 나 있었다.

나 역시도 생활에 변화가 필요하기도 했고

그들의 근황도 궁금했다.


모임 장소는 집 근처로 정해져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슬렁슬렁 걸어 나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달력에 표시를 하고 은근히 간만의 외출을 기다렸다.


하지만 4명의 소모임이 공식(?) 단체 모임이라고 할 정도로

모임 참석 인원이 10명이 더해져 총 14명으로

장소도 여의도로 변경이 되었다.

그 소식에 고민을 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사람에 파묻혀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사실 모임을 참석하는 의미가 사라진다.

한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

그걸 처리하는데 유난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임을 꼭 가야 한다면 몇 번을 다짐하고 나간다.

막상 나가면 다른 사람 눈에는 나는 사회성 좋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웃음과 리액션 버튼이 자동모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오면 기절(?) 상태가 되고 만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했는지 잘 기억도 안될 정도로

일종의 사회적 코마 상태로 나를 잃고 역할에 매몰되는 상태인 거다.

이런 거 너무 자주 하고 의미 없다 생각하여 지양하는 모임 중의 하나인데...

2여 년 전 서강대교를 건너던 때를 기억하면서

고민 끝에 결국 참석하기로 했다.


모임 장소에 들어갔을 때

원래 모이기로 했던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7명이 우르르 들어왔고

공교롭게도 내 앞에 멘토 선생님이 자리를 잡으셨다.

타고난 개그감과 끊이지 않는 대화 스킬을 가지신 그분도

내 앞에서는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셨는지

첫 번째 질문은 이랬다.

'00 씨는 하루 일상이 어떻게 돼요?'

세상에나, 이런 질문은 책에서만 봤던 문어체 질문이었는데

그런데 나는 또 거기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유 거품 내고 커피 내려 카푸치노 만들고

책 읽고 또 커피 마시고 또 책 읽다가... 글 쓰다가...

아무것도 안 해요. 하던 일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안 해요'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미소는 가장 좋은 마침표다.

나도 멘토 선생님도 그저 웃기만 했다. 그 찰나의 어색한 순간은

극강의 E 기질을 가진 모임의 반장님이 개입되어 사라졌다.

I의 제곱에 제곱인 나는 그녀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이후로 계속 나는 문우들의 근황을 듣고

잡다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감으로 순간순간을 버텼다


모임 장소가 영업 마감을 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막 분위기가 고조된 때 자리를 옮겨야 했다.

집으로 가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몇몇이 2차 장소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머리에 맴도는 질문으로 어질 어질 했다.

'도대체 넌 뭐했냐.. 도대체 뭐하니? 도대체 뭐가 되려고?'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무차별적인 질문이었다.

경쟁에 밀린 자의 감정에 휘말린 자아비판이었다.

그 끝에 구체적이 질문이 입 밖으로 툭 나왔다.

'넌 인스타에 자랑하려고 글 쓰니?'

이 질문에 술 한잔도 하지 않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질문은 내 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내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런 질문에 지금까지 진지하게 답을 구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왜 하필이면 드라마일까? ' '나는 드라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늘 철학과 의식을 강조하는 나는 드라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내가 그들처럼 제작사와 계약이 되어 있고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출발선을 벗어나 뛰도록 허락되었다면

이런 질문을 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선발과 경쟁 트랙에서 밀려난 상황을 고상한 척 담담하게 받아들여 애쓰고 있다.

나만 혼자서 여전히 황야의 이리가 되어 고독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계약이 된 상태. 아, 나만 몰랐네.

모임을 주도한 극강의 E인 반장을 제외하고는

나와 비슷한 결의 I 인지라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마이웨이 하는 문우들의 소식은

경박한 나의 태도에 뒤통수를 갈기는 죽비 같았다.


2023 공모전 시작을 알리는 몇몇의 방송사와

2022 마지막 공모전에 당선을 알리는 소식들

그리고 일찌감치 제작사와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문우들

이들 속에서 부러움도, 자책도 아닌

그저 나의 속도로 나를 돌아보고 있을 뿐이라고 포장하지말자. 부럽고 부럽다고 말하자.


그들을 만났기에 나를 돌아보기 되는 계기를 얻었다.

나는 드라마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주 근본적인 답 없는 질문이 계속 맴돈다.

할 거면 하든가 말 거면 말든가 늘 경계선상에 서서

되면 땡큐고 안되면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나의 얄팍함에 허탈하기만 하다.

나는 지금까지 뭘 했던가.....


상대적인 위화감, 위축감, 못난 생각들

이런 것들이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다시 회복할 걸 알기에!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면 나 혼자만의 속도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면 나를 이끌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대중예술이고 분명히 경쟁과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역이다.

나만의 색과 속도라는 것은 어쩌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 승리 요법일 수도 있다. 매우 주관적인 극복 방법

하지만 이런 주관적인 치료 방법 말고 이제는 객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공모전 당선과 제작사의 계약. 이것이야 말로

망생이들이 가장 바라는 출발선 아닐까.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땀복 입고 워밍업만 하는 신세를 한탄하기 전에

지금까지 내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땀복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 땀복이 갑옷이라도 된 듯 벌거벗겨진 내 자아가

얼마나 빈곤하고 빈약한지 깨닫는다.

허황된 구름과 꿈을 넘어선 망상에서 벗어나자.

낭만적 현실은 없다. 그건 달리는 자에게만 있는 거다.

우선은 목적지에 도달하고 봐야 한다.

갑옷같은 땀복을 벗고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온거다.

추워도 버텨라, 땀이 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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