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만 오면 소머즈의 청력이 된다

시끌벅적한 카페의 즐거운 묘미

by VIVA

동네에 24시간 오픈하는 카페가 생겼다.

원래부터 있던 곳이었는데 얼마 전에 영업시간을 변경했다.

구립 도서관을 나의 작업실처럼 사용했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발가락부터 코끝까지 추워왔다.

한동안 집콕을 하면서 작업을 하다가

정말 참지 못할 정도로 지겨워졌을 때

이 카페로 뛰쳐나왔다. 카페는 상업시설이니

도서관처럼 실내 적정 온도를 지켜야 할 의무가 전혀 없고

그러니 분명 따듯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따듯한 온기와 커피 향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의 기대가 배신하지 않고 기쁨을 선사했다.


이 카페는 앞에서 보면 작아 보인다.

작아 보인다는 건 앉아 있을 테이블이 몇 개 없고

작업하거나 책을 읽을 만큼

오래 있을 만한 곳이 못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구 바로 앞에 카운터와 주방이 있어서 더욱 작아 보인다.

그런데 몇 발작만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넓은 공간이 있다.

한쪽 벽에는 벽을 등받이 삼는 고정 의자가 길게 놓여 있고

그 앞으로는 1인용 테이블들이 쪼르륵 놓여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맞은편 벽에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곳에는 아크릴 투명 가림막으로 칸막이가 있고

원목 테이블을 가르는 스탠드가 중앙에 놓여 있어서

마치 도서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자리이다.

하지만 이 최적의 자리들은

시간대 별로 요일별로 최악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벽과 벽 사이에 넓은 비어 있는 공간이

전원이 필요 없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 낮은 안락의자에도 탭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는

조용한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앉아 있다가 가지만

주말과 새벽 시간대는 이 자리가 동네 방앗간처럼

별의별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 된다.

어떻게 알았냐고?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옆집에서 공사를 해서,

윗집에서 쿵쿵거려서 이런저런 이유로

카페로 피난 왔기 때문이다.


평일 오저 8시. 사람이 진짜 없다.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음악을 아주 작게 튼다는 것과

스피커는 카운터 주변에 딱 하나라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카공족 자리에는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오전에는

이 자리가 마치 도서관 열람실만큼 조용하다.

그러다가 11시 정도 되면

조금은 바지런한 인강족들이 온다.

그들 역시 조용하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들인지라

누구한테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아점을 해결하고 마냥 앉아서 인강에 집중한다.

점심시간 지나 두어 시가 되면

중년 여성들의 모임이 수다 존에 안착한다.

사실 그들의 수다 소리는 불편하기도 하다.

한 어린 불평과 하소연이 많다.

부정적인 것을 잘 거르지 못하는 나의 필터 탓이다.

또한 나도 뚜렷한 목적, '하루의 분량 채우기'를

이룩해야 하는지라 나의 몰입과 집중을 방해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 역시 이어 플러그를 꼬깃꼬깃 귀에 밀어 넣었다.

그날 저녁, 이어 플러그가 귀에 꽂혀 있는지도 모른 채

집에 갔다가 그걸 화장대에 빼어 두고 다음 날,

이어 플러그의 행방을 깨달았다.

이미 늦었다. 우르르 몰려온 할머니들의

점심 수다를 여과 없이 들어야 했다.

그들 몇몇은 '여기는 도서관이네, 나가자 나가자' 했지만

또 몇몇은 너무 추운 날씨에 바로 나가면

먹은 거 체 한다면서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자며 조용히 있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와 쌍화차가 반반 정도 구성된 테이블 주변으로

나의 어머니 같은 세련된 차림의 할머니들은 차근차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듣기 싫어도 들려오는 소리를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들리면 들리는 데로 듣기로 했다.

그들의 대화는 방금 먹은 식사로 시작해서

얼마 전 다녀온 여행과 젊은 시절의 사회와 '요즘애들'에 대한 주제로 정말 다양했다.

문뜩문뜩 나의 자판 치는 손을 멈추게 할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도 있었다.

이 수다 존은 오후 4시 정도 되면 다시 조용해진다.

열람실 같은 고요함은 퇴근 시간과 저녁 끼니때 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저녁 7시 정도가 되면 공부하는 직장인들로 보이는 무리로 가득해진다.

수다 존은 다시 공부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간간히 대화 내용은 알 수 없는 통화 대답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다.

바시락 거리는 소리, 기침 소리, 응응 아냐 이런 짧은소리들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또다시 물갈이가 일어난다.

밤 11시- 12시 정도 되면 다들 집에 가는 분위기다.

그러다 새벽 1-3시 사이에는 2차 3차에도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쉬운 그룹들이

이곳으로 모인다.그들의 주사인 듯 술주정 대화는 정말 흥미롭다.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의 대화와 맥락 없이 툭툭 끊어지는 대화는

평행선인 듯 접점 없이 일방통행만을 하고 말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이 말을 내뱉은 자들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무리들은 더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단 날 것 같은 그 한계 시간까지 버틴다.

그 시간이 새벽 4시 전후인 듯하다.

그러면 정말 이 카페는 거의 텅 빈다.


그날 난 새벽 5시에 카페에서 나왔다.

카페 관찰기도 아니고 카페 3일의 다큐를 찍은 것도 아니었지만

24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별의별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입력이 된 것 같다.

내가 겪지 않았던 그들의 인생의 편린들이

내 이야기 주머니에 쌓여갔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일요일은 특수하다. 특별하게 수다스럽다.

오전부터 오후 저녁 시간까지 말소리가 끊임없다.

특히 근처 교회의 예배시간이 끝나는 시간인

오후 1시 전후에는 작업 공간, 책 읽은 공간 구별 없이

카페는 동네 어르신들로 점령된다.

그러니 일요일에는 작업하려면 이어 플러그 필수다.

이런 특수성을 알기에 이어 플러그를 장착하고

오늘의 분량을 메꾸고 있었다.

그런데도 백두산 호랑이만큼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놓고 쳐다볼 수 없기에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 한 분이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말한 게 민망했는지

함께 오신 세분이 그 한 분을 타박했다.

그런데 그 타박의 소리에는 은근한 기싸움이 묻어났다.

'오호라~ 재밌겠는데'

나는 슬쩍 이어 플러그를 뺐다.

그들이 하는 대화를 받아 적었다.

마치 영상 필사를 하듯 말이다.

호랑이 할아버지는 '나'화법이었다.

'내 애기 들어, 내 말이 정확해' '내가 틀린 적이 없어'

몹시도 자기주장이 강하고 이런 강한 주장으로

주변의 밉상을 많이 사는 타입이었다.

일전에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적이 있었는데

대사에 캐릭터가 묻어나지 않는다고

멘토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나의 청력은 소머즈가 된 듯

온몸의 감각이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에 몰려 있었다.

자판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속기사가 된 듯

그들의 대화를 30분가량 들으며 따라 적었다.

그들은 커피가 식었다는 걸 알아챘는데

식은 커피를 원샷하고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나의 긴장도 풀렸다.

등을 뒤로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다시 나의 작업으로 복귀하려고 USB의 폴더를 열었다.

그때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

내가 할아버지 네 분을 관찰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나를 관찰하고 있었던 거다


'저......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

아뿔싸, 이거 사생활 침해라고 나를 공격하려는 걸까?

요즘에는 별의별걸로 트집 잡고

시비 거는 특이하고 특수한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조심스러웠다.

빠르게 그녀를 스캔했는데 마스크에 모자까지 쓰고 있던 터라

그 눈빛을 읽기가 어려웠다.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내 특유의 정공법으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 제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서요...

대사를 쓰렸는데.. 잘 안돼서...

때 마침 할아버지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며 공감 했다.

'어머, 그러시구나, 저도 드라마에 정말 관심이 많아요,

혹시 유명한 작가님도 아세요?

드라마 방영된 것도 있어요?

어떤 드라마 쓰셨어요?'

그녀의 질문은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또 아주 솔직하게

아직 데뷔는 하지 못했고 제작사 계약도 얻지 못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내년에도

공모전에 도전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그녀에게

작가 교육원을 추천하고 물어 오는 대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드라마란 이런 거다라는

나름의 개인 철학과 글 쓰는 자의 고됨을 토로했다.

그녀는 내가 작가 기질이 다분하다면서

말도 잘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에너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말을 자주 들었던 터라

별 다른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는 계속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나의 나이를 묻고 가족상황을 사는 동네를 물었다.

그녀가 자신이 미혼이며 도곡동에 사는데

친구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먼저 했기에

나도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대화의 주제는 드라마에서 작가, 작가에서 연예인,

연예인의 사회적 물의, 학폭 등으로 이어지다가

팔자, 운세, 기운, 종교 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4대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무속신앙까지 종교학에 관심이 많은 나는

지금까지 읽은 책과 경험을 동원해

쉽고 가볍게 드라마 영화와 접목해서 이야기했다.

<밀양>, <곡성>, <신과 함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이야기했다.

어찌나 재미나게 이야기가 잘 오고 갔는지

사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정말 최근 들어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오랜 오래간만에 겪는 경험이었다.

각박한 세상에 이렇게 쉽게 공통의 주제로

격 없이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거에 마음이 녹아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모임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독서 모임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독서 모임은 아니고

에너지 흐름을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절대 강요하지 않고 그저 내가 1시간 정도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 몸이 얼음이 되는 듯 했다.

나는 더더욱 공손하게 강의료를 받는 강사고 작가이며

지금까지 무료로 강의한 건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것뿐이라고

아주 해맑게 대답했다. 그녀의 눈을 또렷하게 보면서.

그녀 역시 지지 않고 에너지 흐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려 했지만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진중하게 이야기를 하고 들으니까

자신이 반박하거나 내 논리를 치고 받아들이며

설득할 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는 말할 타임을 놓치고

그녀가 유도하는 말에 중구난방으로 내가 대답하고

내가 그녀의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어려운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뚜렷해졌다.

막판에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경청만 했다. 그녀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제가 하는 말을 이렇게 다 이해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런데요, 작가님은 이렇게 완벽하게 득도한 사람일 수 있겠지만

가족은 아니잖아요, 가족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엄마잖아요.'


세상 모든 엄마들을 자극하는 이 한 마디! '엄마잖아요'

모성을 죄책감으로 변질시키는 뉘앙스의 이 한마디에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말이 되는 말든

순발력을 발휘해 알고 있는 모든 종교 철학 개똥까지 끌어와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가 '도를 아십니까' 인지 더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피하고 싶은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더는 나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먹잇감을 끌고 가지 못하는 불안감에 쌓여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나는 좀 더 약 올리고 싶었다.

그녀를 이곳에 붙들어 놓는 만큼

길거리의 미래 희생양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 시간이 넘게

서양 역사와 역사 속 종교에 대해 썰을 풀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흑빛으로 변해갔다.

그 호랑이 할아버지의 화법을 그대로 따라

'내 말을 들어봐, 내 애기 틀린 거 하나 없어'의 식으로

그녀를 질리도록 질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날 무렵,

나는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컸나 보다.

내 이야기에 귀가 쫑긋 한 사람들.

도를 아세요의 아가씨와 먹물의 싸움은 뻔했지만

나는 먹물 같지 않는 해맑은 유치원 선생님의 얼굴로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쏭달쏭 했나 보다.

그녀는 약속한 친구가 왔다며 공손하게 인사하고 이별을 고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귀하신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에너지가 참 좋으신 분이라서 원하시는 대로 다 잘 되실 거예요,

정성도 많이 올리셨다면서요, 건강하세요'

눈웃음 한껏 하면서 그녀를 보냈다.


그녀가 카페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판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혼자 웃었다. 도대체 난 뭐한 거지?

그런데 옆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옆 사람에게 민망해서 코 찡긋하며 웃어 보이니까

'혹시 인강 하세요? 설명 너무 잘하신다'


나도 몰랐다, 내가 이런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이 동네 카페의 특별하게 수다스러운 일요일에

나는 타인이 아니 나를 알아버렸다.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

사람은 변치 않는 기질이 있으면서

동시에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발현한다.

이 상황이 아니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나의 설득력과 집요함, 내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도를 아십니까와 2시간 토론해서 KO 시킨 걸로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묘한 승리감과 어처구니없는 개그 같은 상황극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


재밌다. 오늘 분량은 전혀 채우지 못했고

마감 며칠 전 또 열심히 날밤을 새야겠지만

이 24시간 카페에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의미가 꽉 찬 느낌이다. 가방을 쌌다.

배도 고팠고 정말 기가 쫙 빠진 느낌이다.

모자에 목도리에 마스크까지

온몸을 꽁꽁 싸매고 카페에서 나왔다.

집에 가기 전에 분식집을 들릴까

아니면 집에 가서 먹을까 생각하면서

앞만 보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하고 있는데

저 앞에 2인조가 누군가를 잡고 말을 시킨다.

아이코, 그녀다.

자신의 파트너를 기다린 게 맞긴 맞는구나.

나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뭔가 껄끄럽다.

그녀의 정체를 알기 전에 내가 느꼈던 따듯함에

모든 상황이 속상했다.

뒤를 돌아 신호등에서 반대편 길로 건너갔다.


그녀는 정성을 그렇게 올렸다면서

왜 이 추운 날 길바닥에서 '도를 아십니까'로 정성의 영업을 뛰는 걸까?

정성을 올렸다면 적어도 '정성'의 따듯한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닐까....

특별하고 특수한 에피소드를 제공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며...

언젠가 이 이야기가 내 드라마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을 도구화하는 그녀에게 나도 그녀를 에피소드의 도구로 사용하는

소심한 복수를 했으면 좋겠다. 정성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흠집내는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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