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하다는 착각

신년 계획, 더는 없다

by VIVA

"넌 절박하지 않으니까"

친구의 이 말에 순간 조잘거리던 내 입이 꾹 닫혔다.

30년 지기 친구는 나의 강약과 장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요렇게 매정하게 말할 때는 나도 삐진다.

더 웃긴 건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 마음이 진짜 그런 듯

즉각 수용하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부인하고

친구가 말한 것에 나 스스로를 맞추려 노력한다는 거다.

이 과정 끝에 정말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거나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내 감정을 되찾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절박하지 않았나?

이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경쟁이 디폴트인 삶이다.

국가가 인구 억제 정책을 열렬히 시행하던 때였지만

태어나 보니 벌써 내 위로 둘이 있었고

말 좀 할 만하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4남매 중 셋째, 딸로는 둘째 딸로

이리 치리고 저리 치이는 위치였다.

인구가 몹시도 가파르게 증가했던 시대에 태어났던지라

당연히 대학 입학 경쟁률도 단군 역사 이래 최악이었다.

하지만 대학만 들어가면 미래가 보장되던 호시절이었다.

캠퍼스 잔디밭은 선배들의 기타 소리와

막걸리 냄새가 언제나 진동했다.

CC커플의 순정과 조건보다는 마음이 먼저인

낭만이 우선이었고

4학년 2학기면 강의실 출석 대신

회사 출근의 미래가 보장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나라가 망해버렸네!

거품이 급속도로 빠지면서

내 삶은 다시 무한경쟁의 괘도로 밀려났다.

회사로 출근했던 동기와 선배들이

학교로 돌아와 도서관 자리를 하나둘씩 차지하면서

고3 때의 경쟁보다 더한 사회적 생존의 벼랑에 내몰렸더랬다.

내가 선택한 건 해외단기 취업.

한국에서의 경쟁보다 더한 밑바닥에서 올라서야 하는

다시 태어나는 (?) 경쟁에 나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생존 경쟁 끝에는 늘 내가 선택되고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으로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잠들었다.

20-30대로 다시 돌아가라 하면

나는 단호히 거절하고 싶다.


절박함은 한 발 더 가면 낭떠러지이고

앞에는 호랑이가 있는,

더 심하게 비유하자면 발등에 불 떨어져서

그 불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게 보이는,

매우 견디기 힘든 끔찍한 감정이다.

결핍은 욕망이고 절박함은 그 욕망이 채워져야 한다는 기대를 넘어선 집착이기도 하다.

절박함은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생겨난다.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죽기 살기의

맞짱 정신이 절박함이기도 하다.


이 절박함은 정신적인 영역이 아닌

신체적 생존 본능과 연결될 때 더 강력하게 발현된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고, 당장 내일 살 집에서 쫓겨나고 ,

내일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으로

인간이 수렵하던 시절

맹수와 싸워 DNA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도파민으로 인간은 어떻게 하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진화 발전하고

그 방식은 세대에서 세대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절박함의 감정을 언어로 구체적으로 적어가다가

이 부분에서 한발 뒤로 물러 섰다.

나는 내가 바라는 나의 꿈이 절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전혀 없다.

이 꿈을 포기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경제적 수익과 이득이 더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 꿈을 실현하겠노라며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나는 절박한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순수하게 주판알을 굴리고

계산기를 두둘껴야 하는 건지

어디에 가치 판단을 두고

새해 방향을 세워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벼랑 끝에 여러 번 매달려 본 사람은 안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고 나면

두 번 다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노라

맘먹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는 계획 안정형 지향의 인간으로

개조되었고 (내 천성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후 게임이 아예 안 될 거라 예상되면

그 게임에 뛰어들지 않았다.

안정지향으로 사업을 했던 터라

커다란 굴곡이 없었지만

나의 의욕 상실과 코로나로

소리 소문도 없이 폐업의 길에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외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그 속에서

뒤늦게 찾은 드라마 작가가 되겠노라며

수년째 망생이 타이틀을 걸고 있는데...


승률이 아예 없던 게임에 뛰어들어 이긴 적도 있지만

내가 패배하고 실패한 기억이 너무 깊게 각인되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습관이 들었는데

난 이토록 무모하고 비효율적이고

답 없는 드라마 작가의 꿈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나의 절박함은 배고픔의 절박함은 아니다.

나는 내 생의 남아 있는 시간과의 싸움으로

꿈을 위해 생물학적 시간과 딜을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한 없고 희망 없는 나의 꿈에 매달려야 하는 건지

심각한 고민이 든다.

포기하면 편하지만 포기하면 불안하고

선택하면 불안하지만 선택하면 편하다.

이 무슨 말 같지 않는 언어유희가

내 속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미간에 인상이 펴지지 않는 요즘,

어떤 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취미로 해봐' '소일거리로 좋네' '즐기면서 해'

취미로 골방에 하루 종일

엉덩이에 본드 붙여 놓고 머리 쥐어뜯으라고?

소일거리로 대본 분석하고 플롯을 짜 보라고?

즐기면서 사람 죽이고 살리는 개연성을 만들어 보라고?

신경 쓸 것도 없다.

쉽게 평가 절하하고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은!


절박함이 절실해지는 이유는

그 절박함은 결국 행동과 실행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나의 절박함은 하늘에 벗꽃이 휘날리든

눈송이가 내려앉든 나를 밀실의 책상에 앉히고

드라마 분석을 하게 만들고

때로는 모욕적인 합평과 달콤한 칭찬에 널띄게 만든다.


웹소설은 쓰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에

작가 등록하고 내 글을 올리면 그만이다

누가 읽든 말든 올리는데 의의를 두고 써 나가다가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글이 저절로 써져 나간다.

때로는 악평이 붙어도 그걸 또 옹호해 주는 팬이 생기면

그 팬심에 글을 써 나가는 동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내가 쓴다고 해도 선택받고 영상화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 노트북 폴더에서 휴지통으로 옮겨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모전이건, 제작사건, 누군가에게 발탁되고

냉정하게 평가받고 살이 남아야

수많은 스텝과 배우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게 드라마다.

웹소설처럼 나 혼자 쓰면 그만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모두의 꿈은 절박하다.

하지만 절박함이 어떤 행동을 이끌어 내는지는

자기만이 안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빛을 보는 세계에서는

당연히 경쟁이 디폴트고 비교평가는 피할 수 없다.

'나만의' '고유의' '특유의' '개성 넘치는'

이런 수식어를 달고 싶다면

산속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면 된다.

대중 예술, 대중문화의 게임 플레이어로 들어가고 싶다면

우선은 대중 예술의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나의 절박함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

책상이 있는 벽에 붙어 있던

2022년 계획표를 북북 찢어 내고

2023년의 슬로건을 붙이려다가 그만뒀다.

계획과 안정이 이끈 편안함이

나의 꿈을 이루어주지는 않는다.

나의 영혼을 안전지대 comfort zone 에서 밀어내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내몰아야 한다

밤마다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안전지대가 있슴에 그나마 감사해 하면서

몇년을 버티고 있는데

그 안전지대의 담장 마져 깨부서야 하는걸까...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몰아 세운건 나다.

누구도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벼랑밑을 보고 있는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것인지

벼랑 밑으로 추락할 것인지

날개 죽지 밑에 날개가 솟아나

다나까의 아르마니 독수리처럼 승천할 것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거다.

그냥 하는 거다. 절박함을 무기로 ,

최소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절박함의 외줄타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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