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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23. 2024

엄마를 기록하기  

보여주기와 즐기기 사이에서

기록을 좋아하는 나는 첫째의 육아 일기를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영상 매체가 너무 익숙한 요즘 육아 일기라는 개념이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의 풍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첫째의 육아 일기는 아이를 임신한 기간 동안은  

엄마 되는 준비의 기록과 첫째를 만나는 설렘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아이의 수유 타임과 잠자는 시간 기록은 물론

눈을 마주치고 웃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자기 발가락을 입에 넣는 것까지

아이의 아주 미세한 변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정말 깨알같이 기록을 해두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첫째의 육아 일기도 둘째의 육아 일기도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큰 아이의 육아 일기는 매일매일 한 페이지 그득 채워있지만

작은 아이의 육아 일기는 몇 줄의 성장 변화를 적어 둔 게 전부다.


행여나 둘째가 이를 두고 섭섭해할까 봐 굳이 말해두는데

사랑과 정성의 부족이 아닌 순수하게 시간 부족 때문이었다.

육아 일기를 쓸 시간도 없었지만 그 시간이 있을 때는

예쁜 아이들의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아 두기 바빴으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깊고 넓은 사랑이 가득했던 시절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 맘을 속상하게 했을 때면 육아 일기와 사진을 펼쳐 봤다.

그럴 때마다 이 기록을 해두기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진에 담기는 것보다 타인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피사체는 언제나 아이들이다. 엄마답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던 때라 1주일에 한 번씩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찾아오는 일은 또 다른 재미였다.

앨범을 정리하고 예쁜 사진을 부모님께 우편으로 보내고

참으로 아날로그였던 그 시절. 그 덕에 우리 집에는

아이들 앨범이 책장 한 가득이다.


20대가 되어 버린 아이들의 변화는 내 눈에는 아직도 신기하다.

아이들이 여전히 멋지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나는 바보 엄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눈에서 꿀 떨어진다는 말, 사랑스럽게 인정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 역시도 변한다. 나의 엄마도 포함해서.

나도 늙어 가고 엄마도 늙어간다.

아이는 나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었다면

엄마는 나에게 늙음과 죽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겠지.

아이들이 보는 나는 매일 늙어 가는 모습일 것이고

그걸 굳이 사진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육아 일기가  신기하고도 사랑스러운 희망 가득한 이야기라면

엄마의 기록은 마치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를 붙들어 놓으려는 안간힘의 흔적일 것 같다.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과 자녀가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이가 나니 

당연히 글의 색과 내용 또한 다르다.

장르가 아예 다르다.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과 태양이 내려앉는 석양의 색과 느낌이 다르듯 말이다.


엄마도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단지 엄마의 자식들과 함께 찍을 때는 기꺼이 사진을 찍는다.

본인의 모습보다는 자식을 담아 두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래서  엄마와의 여행에서 사진보다는 여행 일지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엄마도 서로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점점 이 생각에 자신이 없어졌다.

엄마를 생각하는 오빠 언니 동생의 시선이 빠진 나의 기록은

이 또한 뭔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결국 이 여행 일지는 어디 가서 무엇을 보고 먹었다. 끝!

이런 식으로 될게 뻔했다. 이런 기록은 사실 사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엄마를 영상에 담기로 했다.

내 전화기에만 두면 오빠 언니 동생에게 전달해야 하고

정리정돈의 달인인 내 동생과 사진광인 오빠는

내가 보낸 사진과 영상을 도대체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할 테고

그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게 아니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도대체 내 생각의 끝은 어딜까..... )


그러다 문득 모두가 볼 수 있는 채널에 올리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바로 채널을 하나 개설했다 '엄마랑 놀자!'

하지만 채널 개설하고 나서 너무 무턱대고 지른 것 같아서

다정한 MZ 세대인 큰 아이에게 연락을 했다.


-정말 괜찮은 생각이에요. 그 덕에 엄마도 할머니랑 놀러 다니고

영상 계속 업데이트하려면 1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야 하고

할머니한테도 엄마한테도 너무 괜찮은 거 같은데요?


아이는 집에만 있는 나를 걱정했기에 이런 나의 제안을 손뼉 치며 응원했다.

아이의 칭찬 덕에 나는 으쓱해졌다. ' 기획력은 아직 괜찮구먼 '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의견 말고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위로 오빠만 있는 귀여운 막내딸인 한 지인에게 내 의견을 물었다.

-지금 하고 계신 채널보다 반응이 훨씬 더 좋을 거예요.

엄마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것도 엄마랑 같이 여행 다니면서 찍는다니 정말 좋네요.

여행 말고도 두런두런 주고받는 일상의 이야기도 포함되면 좋겠어요.

자극적인 영상 말고 담담하고 평화로운 일상 말이에요.


나와 마음의 결이 비슷한 지인 다운 멘트였다.

<인간극장>이나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무해한 영상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그런 거 제작하는 게 더 어렵다. 그 안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 감정과 생각을 담는 게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자고 생각이 여기까지 뻗어 버린 걸까?

뭐 하나 생각하면 이렇게 확장되어 버리는 생각 속도에 스스로 질려 버린다.


동시에 또한 이렇게 모두가 볼 수 있는 채널에 올린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엄마의 신상과 개인 정보 그리고 사생활을

내가 일방적으로 혼자 결정할 일은 전혀 아니었다.

엄마에게 당연히 동의를 얻어야 하고

오빠 언니 동생에게도 의견을 물어야 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가장 맘에 걸린 건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 되어 버릴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나는 엄마랑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데

영상 제작이 목적이 되어서 여행을 가는 건 아닌가 싶었다.

주객전도가 되어 여행이 아닌 일이 되어 버리는 거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우선 채널은 개설했으니까, 우선 영상을 찍고나 보자.

찍고 나서 편집을 해서 올릴지 말지는 나중문제다.

이렇게 산으로 올라간 배를 다시 항구로 끌어내렸다.

엄마랑 여행 계획하는 것부터 해서 만나서 밥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서

둘레길 걸으면서 풀어낼 이야기를 생각하니

작업도 빠르게 잘 되는 것 같았다.  

모니터 앞 기나긴 겨울밤이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4월에 유채꽃 앞에서 유치찬란한 포즈를 잡으며

엄마와 수다 떨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이솝이야기 중에 계란을 팔러 가는 아가씨 이야기가 생각났다.

계란을 바구니에 담고 장에 팔러 나가는 아가씨가

계란을 다 팔고 나면 그걸로 닭을 사고 또 계란을 팔고 닭을 사서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원대한 소망을 꿈꾸다가.....

발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첫 번째 계란을 팔기도 전에,

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란이 다 깨지는 그런 이야기다.

지나치게 생각과 희망이 많으면 오히려 그르친다는 교훈을 주는

나같이 생각이 너무 많은 인간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들뜨지 말고 지나친 기대를 할 필요도 없고

첫 번째 계단 하나만 오르는 걸로

충분히 만족하자고 나는 늘 나를 다그친다.


-커플 운동화고 뭐고 엄마랑 여행 가는 게 중요한 거다.

그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거니까 열심히 작업해서

이번 일감으로 번 돈은 엄마와의 여행 경비로 전부 사용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또한 너무 많은 생각이었던가? 내 무거운 머리에 스스로 무릎이 꺾인걸까?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밀어 버린 걸까?

바구니에 담겨 있던 계란은 깨졌는지 아닌지 흔적조차 확인 안 되고

내가 안고 있던 바구니는 땅에 엎어진 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와의 여행이라는 계란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를 예쁘게 영상에 담고자 했던 생각 계란은 

깨지지 않고 풀밭 어딘가에 있기는 한 걸까?


질문을 해야 버틸 수 있을 거 같다.

지난 1주일 동안 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바둥거리는 동안은

그래도 깨어 있을 테니까. 버텨야 한다.

그렇게 나는 어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버텨라,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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