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VA Feb 25. 2024

단톡방은 거절합니다  

개인주의자들의 소통 


퇴근한 오빠가 아빠를 한의원에서 집으로 모시고 돌아왔다. 

오빠에게 계속해서 강짜를 부리는 아빠에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오빠는 자신의 아들을 아빠 곁에 남겨 두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빠가 전화했나? 내가 전화했나?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 둘은 서로 통화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의논했다. 

가장 우선인 것은 아빠의 입원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의 가장 전형은 타박상이다. 

응급실에서 실행한 검사 결과로 골절과 실금이 보이지 않기에 

정형외과나 대형 병원에 입원은 불가하지만 

한방 병원에서는 입원이 가능하다는 정보 하나를 얻었다. 


한방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오빠는 서울의 동쪽에 나는 서울의 서쪽에 산다. 

현재 엄마는 서울의 동남쪽에 입원해 계신다. 

지역적으로 오빠네가 엄마 병원에 가까우니 

아빠는 내 집 주변 병원에 계시면 좋겠다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간병인 없는 병원이 있다. 

코로나로 병실 면회는 안되지만 

등록된 가족은 휴게 면회실에서 가능한 곳이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나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내 생활 반경 안에 아빠가 있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바로 전화했다. 한 밤중인데도 전화 연결이 되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진료 결과에 따라 입원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나는 아빠와 소통할 생각을 아예 접었다. 내 입만 아플 것이다. 

아빠는 자녀마다 조금씩 다른 화법을 사용한다. 

나한테는 아이처럼 굴지만 오빠 앞에서는 제법 목소릴 깔고 애써 권위를 내세우려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을 따지고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빠에게 아빠 내가 책임지고 입원시키겠다고 호언 장담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통사고가 나면 3일 이내로 입원하지 않으면 

보험에서 비용을 처리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시기적절하게 아빠를 병원에 모신건 참 잘한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사건 경위와 보험처리 여부등을 알아봐야 했다. 

자동차 범위의 대물과 대인의 보상 범위, 실비 보험, 간병 보험 등 

엄마 아빠의 보험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엄마의 보호자를 아빠에서 오빠나 나로 변경해야 했다. 


사실 이 일이 타인의 일이거나, 직업으로 하는 일이라면 

클릭 몇 번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들이다. 

감정 없이 일로만 친절하게 설명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4남매는 모두들 충격이었고 허둥거렸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서서 정신 똑바로 붙들어 매고 소통을 해야 했다. 

단톡방을 만들어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제안할까 했지만 

아주 오래전 가족 단톡방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 

그 또한 포기했다. 결국 1: 1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런 소통의 방식에는 소통 허브 다시 말해 중심점이 필요하다. 

그 역할은 다름 아니 또 나였다. 어쩌면 당연하다. 

정확하게 가운데 낀 나니까 가운데 역할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나는 오빠와 통화했고, 시언니와 통화했고 언니와 통화했고 

마지막으로 동생과 통화했다. 

말하는 사람은 주로 나였고 그들은 듣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확인할 게 있으면 톡을 보냈다.

아침 7시까지 아빠를 모시러 가야 하는데 

새벽이 되어서도 톡이 멈추지 않았다. 

단톡방을 개설해서 소통하면 편하기는 할 텐데...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은  나였고 감정을 전달하는 인간은 언니였고 

울음을 꾹 참아 내는 존재는 동생이었고 말을 아끼는 영혼은 오빠였다. 


회사였다면, 조직사회였다면 

단톡방을 만들어 팩트와 업무 진행사항을 주고받겠지만 

여기는 개인주의자들의 가족, 서로의 감정과 생각이 고유하고 독특하기에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가족이라는 조직이기에 

모두 단톡방을 소리 없이 거부했다. 



목이 쉬어 버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불안을 잡담으로 해소하는 사람과 대화를 했고,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사람과 대화를 했고 

어린아이들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소식을 알리지 않으려 

꾹꾹 울음을 참아내는 사람을 대화로 위로했다.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들과 대화하면서, 떠들어 대면서 내면의 불안을 나 역시도 잠재운 것 같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일종의 감정의 필터, 정화 장치 역할을 하는 느낌을 받아 

내 감정을 대놓고 드러낼 수 없었다. 

꾹꾹 누른 감정이 터져 나올지 스스륵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마 이 사고의 끝에서 알 수 있겠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기진맥진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하나의 단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