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전공자의 뻔한 짝사랑 고백
대학교를 가고 전공에 대한 후회가 한없이 밀려왔었다.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을 해야 하는 학과를 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전공 언어를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외고 출신이 그득했던 과에서 꼴찌는 당연했다.
꿀 먹은 벙어리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학사 경고와 휴학을 반복하다가
나를 그래도 졸업할 수 있게 힘을 준 과목이 있었다.
프랑스 소설 강독 '이방인'
교수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미지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키가 훌쩍 컸고, 조금 마르고 머리카락이 별로 없었다.
듬성한 머리를 애써 넘기시는 모습은 빈한 느낌 보다는
오히려 지독한 고독의 증거로 다가왔었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아주 가끔 질문을 던졌지만,
우리는 언제나 껌쩍거리는 눈동자로 대답했다.
대답할 의무도 없었고, 그렇게 강요하지도 않았고
토론이나 팀워크를 발휘해 발표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교수님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듯한 목소리로 프랑스 원어로 소설을 읽고
거기에 담긴 문학적 의미를 파악해 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문학 수업을 무지 좋아했던걸.
국어 과목이 국어 1, 국어 2 그리고 문학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문학 과목은 별 비중이 높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나는 별도의 스크립 공책을 만들어
선생님이 추천했던 책과 원문을 찾아봤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부모님 댁에 가면 그 공책이 다락방 어딘가에 있을 거다.
참 애틋하게 살뜰하게 정리했던 공책이었는데
프랑스어 소설 강독 시간도 그랬다.
기호보다 의미에 집중된 시간은 나를 살렸다.
학과 과정이 거의 실용 언어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 과목 수강생이 많지 않았던 것도 마음 편했다.
학교를 자퇴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터에 불불 사전까지 구입해서
수업에 엄청 열심히 참여했었다.
꿀꿀했던 대학교 시절의 잠시나마 꽃망울이 피어났다.
'문학을 전공했어야 했어'
생계형 사회생활을 하던 때 늘 책으로 위로받던 기억이 있다.
물론 문학을 전공했으면, 돈을 벌었어야 헀을거라고 한탄했을 수도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결혼정보회사에서 밑바닥에 있다는 웃픈 소리가 있다.
그러니 책만 읽는 간서치는 사회적 쓸모를 생각하지말고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으로만 버텨야 하는 한량 중의 한량일 수 있다.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생계는 늘 외줄 타기 마냥 위태롭지만
언젠가부터 생에 대해 조금은 뻔뻔해진 것 같다.
불안보다는 자유를 더 만끽하고 있으니,
한량의 꿈에 한층 다가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독서는 매우 개인적이고 자기 주체적인 활동이다.
여행처럼 내 발로 직접 가지 않으면 절대 얻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TV나 SNS로 여행지를 구경하는 것과
직접 초원의 잔디를 발로 밟고 어버버거리며 새로운 세상을 감탄하는 것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책은 내가 비틀거리며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
언제나 손을 뻗어 주었다.
언젠가 읽겠지 하며 챙겨둔 허세 어린 책들은
그럴 때면 언제나 눈에 들어왔고
나는 어김없이 그런 책에 파묻혀 나와 멀어져 나를 잊을 수 있었다.
책은 내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구경할 기회를 주었고
그 다른 세상에서 돌아왔을 때는
나의 세상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자체로가 문제 해결은 아니다.
문학이 내 문제의 답을 내주거나,
문제 해결 도구를 만들어 주는건 아니였지만
분명 책을 읽고 나면 변화가 일어나는건 분명했다.
책속의 타인이 살아낸 삶의 역동성이
내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변화를 일으켰고
그 변화로 문제와 갈등을 새롭게 접근했고,
그 덕분에 문제를 해결하거나 삭제할수 있었다.
책의 도움을 받아 살아낸 삶,
책과 문학의 쓸모를 좀 더 생계유용하게 사용하려고
너무나 성급하게 북튜버를 시작했더랬다.
옆에서 나를 엄청 부축였던 피디는 얼굴을 반드시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갈급함에 비판적이 사고를 못하면 늘 체하기 마련이다.
아이고야, 얼굴을 내밀고 말았네!
얼굴 내미는 거 정말 싫어했지만, 책 이야기는 하고 싶어서 감행했다.
내가 정보를 좀 더 많이 알아보고 방법을 여유 있게 찾아봤다면
아마 나는 얼굴 내밀고 영상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초반에는 꾸역꾸역 얼굴 내밀고 했지만,
어느 순간 얼굴 없는 영상이 트렌드가 되면서
지금은 나 역시 얼굴 없는 영상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지금은 얼굴 없이 영상을 만들고 가뭄에 콩 나듯 콘탠츠를 만들고 있는데
어떤 이는 그 시간에 그 노력으로 다른 걸 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고 나에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거 아니다. 노력대비 세상의 반응은 너무 미비했으니
좌절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뭐 달라지나
후회하면 어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면 뭐 달라지나 이런 생각이다.
그 순간, 힘들었던 시간, 인간관계와 상황파악으로 매일이 힘들었던 순간들,
유일하게 나를 잡아 주었던 건 독서였기에 독서 관련 북튜버 활동은
나에게 독이 아닌 약이었다.
그렇게 독서로 현실 도피와 현실 위로를 받던 때
문득 궁금한 게 생겼었다.
문예사조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학교 다닐 때, ~파, ~주의는 많이 들어 봤는데
거기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문예사조가 정말 중요하기는 한 걸까
왜 이게 자꾸 머리에 맴돌지?
신구 배우가 말한 '너희가 낭만을 알아?'
낭만적이라는 말의 낭만이 과연 뭘 의미하는걸까?
독일에 살면서 독일의 낭만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사조와 흐름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뚝딱 생긴 게 아닐 텐데 라는 생각이 많았다.
역사기록은 대부분 정치 경제 사회가 주류였고
문화사는 뒤쪽에 몇 줄이나 몇 페이지 할당이 전부였다.
물론 문화사와 예술사에 집중한 책은 많다.
하지만 문학사는 거의 교과서적인 학술서가 대부분이었고
문예사조로 주제가 더 좁혀진 책은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순수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중고서적을 구입하고, 헌책방에 가서 절판본을 구하기도 하고
부모님 집에 가서 대학교 때 배운 수업 자료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보다 했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문예사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김은숙 작가는 어떻게 이런 멋진 대사를 써낼 수 있었을까?
김희성 배우는 어떻게 이런 멋진 대사를 진짜처럼 연기 할 수 있었을까?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나의 호기심에 발동을 걸어본다.
쓸모없으나 아름다운 문학에 대해서....